마음 가는 대로

곰배령에 들다

권규림시인(옥희) 저 개명했어요 2014. 7. 14. 02:12

 

곰배령에 들다

 

                                                    권 옥 희

 

 

 우리에게 자연은 마음 하얗게 비우는 폭포수와 같다.

떠나보면 안다고, 그래서 때만 되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자연을 찾아 흘러흘러 간다.

그러나 산신령이 여신인 해발 1100여 미터의

점봉산 곰배령은 찾아가는 게 쉽지 않다.

마음이 통해야 등을 내어준다.

 하늘 아래 첫 동네인 강선마을은

곰배령을 이고 죽자고 살자 들었다가

떠나간 화전민들 대신 곰배령 초입에 터를 잡았다.

 

그 끝집을 뒤로 하고 열목어와 수달이 노니는 계곡의 돌다리를 건너가면

내 몸을 휘감아나가는 초록바람부터 만나게 된다.

산에서 흘러 보내는 건 모두 고마운 은혜다.

내 속까지 들여다 볼 맑은 물, 때 묻지 않은 바람에 살짝 얹혀오는 풀냄새,

푸름에 물든 새소리, 조곤조곤 웃고 있는 들꽃들.

산이 펼치는 푸른 세계에 묻히면 

우리는 그들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느낀다.

 

 백두대간으로 이어진 곰배령은 들꽃 군락지로도 유명하다.

1년의 절반은 겨울,

우리나라 유일한 원시림으로 300년을 지켜낼 수 있었던 건

산자락 굽이굽이 골이 깊었기 때문이다.

곰배령을 곰배령이라 부르게 하는 보물들로 군락을 이루며

그렇게 하늘빛도 들어오지 않을 만큼 키 큰 나무들이 덮어버린

이 산길의 하늘은 초록이다.

가슴을 있는 대로 펼쳐 뚝뚝 떨어지는 푸른 물 상큼하게 마셔가며

산이 내어준 심장 속으로 느릿느릿 걸어가면 된다.

 

가래나무, 야광나무, 신갈나무, 거제수나무, 찰피나무, 복장나무들이

서로의 팔을 뻗어 제 발 밑에다 여리고 작은 것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누구에게도 맨땅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얼마나 서로를 다독였을까?

때로는 한 발짝 비켜서서 어깨를 들추며 햇살 한 자락 내려앉혀

힘없는 것들에게도 고루 나눔을 줄줄 아는 배려,

그것이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화두며 우리가 간직해야 할 진리임을

산은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나 죽으면 이런 곳에 들 수 있을까?’

 

미나리아재비, 둥근이질풀, 동자꽃, 산꿩의 다리, 노루오줌풀 등의 많은 꽃들이

하늘의 천사들과 노니는 곰배령의 천상화원.

하늘꽃밭으로 가는 길은 그래서 가슴을 크게 열고

삶의 꽉 찬 욕망을 비우며 가는 치유의 길이었다.

얕게는 소(沼)를 이루고 조금 깊게는 담(潭)을 이루며

폭포수까지 산을 어루만지는 이 골짝에서 습하고 물기 많은 나무들처럼

목마를 일이 없어 행복한 곳에

나도 한 그루 나무로 서 있으면 좋겠다.

한 송이 어여쁜 들꽃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