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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꽃, 사랑에 취하다

어린이날이다. 엄마 아빠 손잡고 나들이 갈 꿈에 부풀었을 아이들을 실망시키며 비가 온다. 연이틀 내린다는데 왜 하필 오늘이었을까? 짓궂게 비를 뿌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옆을 보니 고운 색을 안고 핀 작약이 함초롬히 비에 젖고 있다. 너도 나들이 가지 못한 어린이였구나. *************************************** 등꽃, 사랑에 취하다 / 권옥희 그래, 몸이 먼저 안다 홀씨에 닿은 바람결에 엎드린 젖빛 사랑의 테러 날개 접은 나비를 맞으면 순식간에 신음이 터져 나온다 사랑을 채우려 한낮에도 슬픔이 뚝뚝 떨어지는 꽃 감당 못할 신열로 꽃잎 자락이 들뜨고 초점 약한 숨을 고르며 몸을 낮추어야 들리는 등꽃의 화음 연보랏빛 물결이 잇따라 울리는 종소리처럼 사랑에 취할 때 덮치듯 입술을..

새 글 2024.05.05

자귀나무 꽃

자귀나무 꽃 권 옥 희 비 그친 뒤 깃털 부챗살 살살 부치며 자귀나무 꽃이 농익었다 빗방울 묻힌 눈썹달 발그레하다 쫀득한 민어의 속살 같은 저 꽃살의 보들보들한 깃털 속에 묻힌 오늘 밤은 별도 화사하다 내가 사는 날까지 꽃은 핀다 해가 솟아오르며 자귀나무 꽃 더욱 요염하다 가던 바람도 붙들려 움찔움찔 성감대가 풀린다 하늘에 연분홍 깃털 날아올랐다 꽃길 하나 선명하다.

새 글 2020.07.09

꽃을 잃은 봄날

꽃을 잃은 봄날 권 옥 희 집 주인이 집을 내어놓고 떠나자 20여 년 함께 산 목련나무가 제일 먼저 베어졌다 꽃 피우기 직전이었다 꽃을 잃은 봄날 바람이 돈주먹을 쥐었다 펴는 동안 시멘트가 부어지고 대리석이 붙여지고 목련나무 키를 넘어 층층이 집이 올라갔다 막힌 골목길에 섬처럼 뜬 내 집 낮은 창에 깊어진 목련꽃 그늘을 들추며 햇살이 돈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다 분양완료!돈이 없어 서러운 봄날이다.

새 글 2015.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