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여쁘다
권 옥 희
수많은 물방울이 매달리던 아침마다
창문을 열어주던 숲을
오늘은 뱀이 품고 있다
숲에 오래 살다 보면
뱀도 사랑의 귀가 뚫린다
밤꽃은 보이지 않고
사랑 냄새만 진동하는 방
그들의 몸집이 꼬물거리는 끝에서
햇살은 방향을 바꾸고
엉킨 허리가 회전할 때마다
앉은 자리 별꽃은 우르르 포장이 된다
한낮을 즐겁게 맞물려 돌아가는 숲은
이를 딱딱 맞추며 꿈을 잃은 눈들을 붙들어 앉히고
들꽃 세상 한 바퀴 돌아나온 따땃한 사랑은
소나무가 뱀인지, 뱀이 소나무인지
화려한 무늬를 가지지 않아도
잠시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은 죽도록 어여쁘다
우리는 오래 전에 사랑에 눈을 뜨고 있었으나
한 마리 뱀이 품은 세상 안에
숲이 있는 걸 비로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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