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방
권 옥 희
숲의 방에는 누가 살까 궁금했더니
나무 지붕에 얹힌 낮달이 살고
얕은 흙무덤 속에 일개미들이 살고
가지마다 스쳐간 바람의 추억이 살고
향수보다 진한 나무들의 냄새와
내 발바닥에 묻은 땀냄새
외따로 벗어둔 구두 한 짝을 공감한
숲과 내가 서로 기울어진 곳을 괴면서
잘 살았다고, 오늘 하루를 축복할 수는 없을까
숲의 방 밖에서는 사랑에 적응 못한 목숨들이
순간처럼 스러진다고 누군가 적고 있고
수많은 일들이 생겨나고 잊어진다고
또한 적고 있고
이별을 포기 못한 몇몇의 연애자들은
슬기롭게 그들의 아지트를 찾아
숲의 방을 찾아든다
어서 밤이 왔으면-
그늘을 생각하며 그늘을 꿈꾸는 나무
그들의 방
벗은 구두 한짝과 나도
기울어진 나뭇결이 흔드는 데로 스을쩍
외진 곳의 한쪽을 괴고 싶네
그들의 방이 되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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