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없어요
권 옥 희
물에 잠긴 고향은 고향이 아니죠
급류에 휩쓸려가던 가엾은 것들의
가벼움에 대한 기억도 내 것은 아니죠
물과 물이 힘을 견주며 고향을 삼켜가던 날
도리없이 떠내려가던 지붕이며 박꽃덩굴
그 자리의 번지 수,
묵은 논 미나리 자라듯 무성하게 키가 자란
주변의 추억들만 오늘을 살지요
어제는 없어요
일찍이 배워버린 술맛과
고향 떠나며 끊겨진 기적소리와
팽팽한 바퀴로 굴러가던 나이와
오래도록 따라다니던 본적지도 이젠 아니에요
그래도 때때로 그리움이 탈 때면 나는
꺼져버린 추억의 시동을 다시 걸고
고향을 보러가요
넘쳐도 원망스럽고
모자라도 원망스런 물 속
겨우 어금니 몇 개 솟아나
입안을 다 채우던 그 때
내 나이를 수소문한 뒤
"저기에요, 저기가 내 고향이에요!"
불어터진 목소리로
생각나는 이름이나 실컷 불러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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