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깨다
권 옥 희
한쪽을 태우고 나니 다른 한쪽이 타오릅디다
늘 무거웠습니다
때로는 그것에 못이겨서
부끄럽게 남의 것을 탐했습니다
사랑이었습니다
할 일은 산더미같고 허리의 중량도 불어나 있고
쫓기는 요주의 인물에게 햇빛은
늘 미행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양말이 어디로 갔지? 손수건은 또 어디 있지?
자진출두를 위해 발을 씻고 물기를 닦았습니다
사랑은 수시로 변해
무거운 양심으로는 세상과 대적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송두리째 빼앗아도 거리낌 없는 두둑한 배짱도 있는데
까짓, 남의 것 조금 탐했기로 반성문 정도려니 했지요
부끄러움을 알기에
눈 녹듯 양심도 걸려지려니 했지요
아까워서 쓰지 않은 새 그릇들이
찬장 속에서 빼꼼이 내다봅디다
사랑하면서도 외롭다는 사실에
문득 밥 먹고 싶다는 생각에
그릇들을 꺼내다가
그 중 하나가 깨어지고 맙디다
산산조각 나고 맙디다
나는 깨어진 양심을 다시 붙여줄 용기도 없이
주섬주섬 주워담아 종량제 쓰레기 봉투에 몰아넣었습니다
조각난 양심이 어디론가 실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내 곁에 머물던 바람은
아주 짧게 지나갔습니다
다시 밥을 먹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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