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물에 잠긴 내 고향 새들이 그리워

권규림시인(옥희) 저 개명했어요 2011. 8. 15. 20:45

1967년 12월 24일.

서울 간다고 좋아하면서 엄마 손 잡고, 밤기차 타고

나 고향 떠날 때 이렇게 물속에 잠겨버린 고향을 볼 줄 상상이나 했을까요.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안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곳 임동을 거쳐야

청송 아버지 나라에 갑니다.

무정한 임하댐이 이렇게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을 물속에 가둬놓았네요.

아버지는 왜 하필 우리를 서울에다 내려놓고 고향 근처의 멀고 먼 골짝으로 숨어드셨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새벽같이 출발해서 달려온 길이

한낮 땡볕에 목이 마릅니다.

저기야, 저기가 내 고향이야!

그리고 저 다리 밑이 내가 살던 우리집이었어!

우리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차에서 내려

지금은 가물가물한 어린 날의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안동시 임동면 중평리 새들!

여름날 하얀꽃 눈처럼 날리던 홰나무가 마당을 다 덮던 집.

그 집이 한없이 그립습니다.

 

       

                               물에 잠기기 전의 내 고향 임동, 그리고 새들

                         가을 걷이 끝난 뒤의 쓸쓸한 풍경 속에서도

                         정겨움이 묻어나네요.

                         키만 멀뚱하게 커 보이는 저 홰나무 서 있는 집이 우리집입니다.

                         물속에 잠겨 흔적없이 사라졌어도 내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꿈꾸는

                         내 마음 속의 집, 지을 수 없는 유년의 집! 

 

수몰민의 한이 서린 물길은 유유한데

그리운 고향 사람들 다 어디로 갔는지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곳은 유안진 시인의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에 나오는 금당이재입니다.

우리가 다니던 초등헉교의 뒷산이기도 하구요.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물길 바로 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지만

살길 막막한 터전에 웃을 일 없는 고향 사람들의 모습이

물 위에 마구 떠오릅니다.

 

저기 저 다리 밑이 우리집이 있던 자리.

그리고 여름이면 멱감던 개천이 흐르던 자리.

까맣게 살이 타도 즐겁기만 했던

내 어린 날의 뒤안길이 등 뒤로 흐릅니다.

 

여기도 짝꿍과 왔네요.

네 살 코흘리게가 이렇게 어른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 짝꿍과 함께요.

일명 코알라와 산다람쥐~

 

                      

저 다리 뒷산 노루메기에는 우리 할배, 할매의 산소도 있습니다.

할머니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가 한밤중에 이 아이 낳았을 때

호랑이 같았던 우리 할배, 직접 미역 담궈 미역국을 끓여주셨습니다.

 

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그리운 내고향!

 


 

한창 천지사방 모르고 뛰놀던 동무들 다 두고 떠났던 고향,

어느덧 흰머리 나고 잔주름 잡힌 중년의 나이.

가는 세월은 누구도 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 다섯식구 얼굴로도 이 넓은 임하호를 다 가리네요.

 

언제 또 이렇게 찾아와서 이 모습을 다 남길 수 있을지

그 시간을 기약할 수 없어서

순간의 포착을 남기고 또 남겨봅니다.

 

낯선 고장에 와서도 낯설지 않게 서서히 한몸이 되어가는

태범씨도 어쩔 수 없는 임동사람!

 

그냥 반겨주는 사람 없어도 머무르고 싶은 순간들...

 

이름만 부르면 물속 여기저기서 뛰쳐나올 것 같은 동무들

이름 하나하나 속으로 열댓번도 더 부르며

마음에 이슬이 맺힙니다.

 

나무박사가 단풍나무 씨앗이 참 많이 열렸다고 하네요.

아, 빨간 것이 단풍나무의 씨앗이군요.

내 친구 광웅이네 집 앞 단풍나무는 아닐지...

 

텃밭에 그 어머니가 가꾸는 깨가 소담스레 여물고 있습니다.

 

이 호수 가득 수상레저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쉬움을 남긴 채 우린 또 저 다리를 건너고 가랫재를 넘어

청송으로 출발합니다.

아버진 눈 빠지게 바깥길을 내다보며 서성거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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