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활동

나비처럼 날다/김종상 선생님 시비 제막식에서

권규림시인(옥희) 저 개명했어요 2018. 9. 30. 05:54




나비처럼 날다 / 권 옥 희




아동문학의 대가 김종상선생님의 시비 <나비>가

안동 문화예술의 전당 뜨락에 세워졌다.
이미 김종길선생님, 유안진선생님 등 안동이 배출한

우리 문단의 거목 선생님들의 시비가 세워져 있는 가운데

선생님의 시 <나비>는 마침 한가운데가 비어 있어서

끝자리가 아닌 마치 안성맞춤처럼 보기 좋게 중앙에 세워졌다.

풍산이 본향이고 안동사범대를 나오셨지만

고향과는 거리가 멀어서 안동에 아는 사람이

전화로 주고받는 분 한 분밖에 없다며

선생님은 가족들과 함께 먼저 내려가셔서 관계자분들을 만나고

버스 한 대를 가득채우며 축하해주러 가는 우리는

 아침 일곱시에 발산역에서 출발했다.
60년이 넘는 오랜 문단의 경력답게
우리 오동춘고문님과 조남선회장님 을 비롯한 강서문협임원들 말고도

오늘의 모임을 리드하는 홍재숙 선생님의 가산문학회 회원들과

청계문학, 가교문학, 시선, 시가 흐르는 서울 등

각계의 제자들이나 인연 맺은 사람들이

모두 김종상선생님을 사랑한다고 하여

우리는 오늘 안동행으로 함께 동행하는 만남을

<김사모>라고 칭하였다.

4시 30분에 시작하는 시비 제막식 전에 문학기행하듯

우리는 먼저 하회마을에 들렀다.

안동기온 37도! 오늘도 어김없는 폭염이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고즈넉한 조선시대 옛마을은

현대 속에서 과거를 품으며 한번쯤 찾아가

자신을 내려놓게 만드는 가교역할을 톡톡히 한다.

흙담이 정감이 가고 그 아래 핀 맨드라미, 봉숭아꽃이

우리 어린 날 골목모퉁이에 올망졸망 앉아

공기놀이 하던 것마냥 앙증맞다.
그런데 마을이 너무 조용하다.
마치 사람도 시간도 저 이글거리는 폭염에 증발된 것마냥

봄 가을 사람들로 북적이던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나라에서 정한 불천위 서애 류성룡 선생님의 위패를 모신

병산서원은 가을이 그리운 파란 하늘에 흰구름을 이고

언제나 그렇듯 이맘 때는 목백일홍꽃 속에 들앉아 있다.
폭염 속에 붉은 꽃이 뜨거움 속을 걸어가는 우리 가슴을

정열로 이글거리게 하면서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마루에 앉아 바람 한점 없는 만대루를 바라보니

일곱병풍을 두른 병산의 푸름을 배경으로

글 읽는 선비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조금 불편해도 일부러 길을 넓히지 않고
차에서 내려

흙길을 걸으며 느림의 미학을 맛보라는 취지는

역시 선비의 고장다웠다.
무엇이든 새것, 좋은 것, 편한 것만 찾는 지금

옛것을 지키기 위해 발전을 거부하는 건

우리 고향밖에 없는 것 같다.

더위에 푹 익어도 고향에 왔다는 설레임에

나는 여러 번 왔어도 다시 보지 못한 곳 한군데라도 더 보려고

구석구석 빠지지 않고 돌아다녔다.
행사장으로 가니 향우회 활동하며 자주 뵌

 권영세 안동시장님, 김명호 도의원님도 오셨다.

누군가 낯이 많이 익는데 어디서 봤지? 하며

기억이 가물거리고 있는데 뜻밖에

우리 임동초등학교 55회 후배인 남상호동생이었다.

안동시 문화예술팀장으로 오늘 이 행사 진행을 맡고 있었다.

이렇게도 만나게 되는구나~ 반갑고 기뻤다.


안동 문인들의 시화전도 여섯 시에 개막을 하게 돼 있어

시화집을 보니 우리 임동, 그것도 같은 마을인

새들 출신 시인인 김명자시인의 작품도 실려 있어서

혹시 오셨냐고 물었더니 방명록 서명하는 곳에

계셨는데도 얼굴을 못 알아봤다.

안동문인협회 부회장으로 활약하는 언니를

까마득한 옛날에 봤으니 어찌 아노.

언니도 나도 반가워하며 그래도 기억나는 이름들을 들먹이며

고향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에 반가워 어쩔줄 몰랐다.

봄에 했으면 팔랑팔랑 날아가는 나비에 딱 어울렸을 텐데
왜 이런 행사를 이렇게 더운 여름에 하는지

여든이 넘으신 선생님이 힘들어보였다.

선생님이 고향에 시비를 세우는 짧은 소감을 말씀하시고

등단시인 '어머니' 를 낭송하실 땐 가슴이 찡했다.

어머니 / 김종상


들로 가신 엄마 생각, 책을 펼치면
책장은 그대로 푸른 들판.
이 많은 이랑의 어디만큼에
호미 들고 계실까 우리 엄마는.

글자의 이랑을 눈길로 타면서
엄마가 김을 매듯 책을 읽으면,
싱싱한 보리숲 글줄 사이로
땀 젖은 흙냄새, 엄마 목소리.


시비를 제막하고 나서도

선생님 얼굴이 햇살에 녹아날만큼

너도나도 함께 사진 찍는 시간이 길어졌다.
여러단체 사십여 명이 함께 내려가서

선생님을 빛내고 우리 자신을 빛낸 행사가 끝나며

 바위에 새겨진 <나비>를 보니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며

아직도 소년 같으신 선생님의 심상이 참 고와보였다.
그래서 모든 제자 후배들이

선생님은 인자하시고 사려깊으시며

모난 데가 없다고 하시나 보다.


시 쓰는 모든 시인들의 로망~
고향에 자신의 시가 새겨진 시비 하나 가져보는 것.
그래서 오늘의 주인공인 선생님이 더 우뚝 서 보이고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이 솟구치며

선생님을 닮고 싶어졌다.
내곁에 안태고향을 함께 나눠가진

좋은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만으로 으쓱해지는 사실을

숨길 수 없었던 뿌듯한 고향나들이었다.
선생님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곁에서

좋은 말씀, 따뜻한 사랑 나눠주시기를 바라본다.


나비 / 김종상


살구꽃 환한 뜨락
꿀을 따는 나비는

바람 속에 피어난
날개 고운 꽃송이

가는 봄 세월따라
꽃가지 띄우고

허전한 그 자리에
제가 앉아 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