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는 대로

안동에 오셨니껴

권규림시인(옥희) 저 개명했어요 2017. 11. 19. 00:27




안동에 오셨니껴


 

                                                        권 옥 희

 

 

날씨는 쾌청했다.

가을이 깊어간다는 걸 길 가의 가로수들이,

산의 붉음이 말해줬다.

산이 불 탄다는 말이 딱 맞다.

무엇이라도 찌를듯 힘이 넘치던 그 푸름도

막무가내로 오는 가을 앞에서는 하염없이 무너지면서

속 깊은 붉음을 햇살 속에 밀어넣고 있다.


 

지금 자리도 넉넉한 28인승 리무진버스를 타고 여유롭게

'내 고향 먼저 돌아보기' 행사로

안동 가는 길이다.

경북향우회와 한국관광공사 주관으로

160여 명의 적지 않은 인원이 스무 명씩 나눠

각각의 고향 유적지나 명승지를 찾아가는 행사인데

우리는 안동이 내세울만한 유적지나 관광지를 돌아보면서

양반의 고장, 우리 안동의 면모를

다시 새기며 널리 알리는 것이다.


 

 

  

김계동 영가회 회장님의 인솔로 김시락 길안면회장님,

김순자 향우회부회장님, 도산의 강금자님,

우리 임동의 유지영과 김은희 외에는 모두 낯선 분들이다.

그런들 어쩌랴. 고향 가는 길인데-

몇해 전 친구 신랑들과 부부동반으로

세 쌍이 함께 둘러본 코스 그대로

봉정사- 하회마을-병산서원-월영교-도산서원-

민속박물관-신시장, 구시장을 둘러보는 일정이라

약간의 설레임은 반감되겠지만

그 때는 한여름이고 지금은 단풍이 절정인 가을이니

색다른 면이 또 있을 것같아

기대감은 여전히 들뜨게 한다.

더구나 해설사의 안내설명까지 들으면서 둘러본다니

더 깊은 애정을 가지고 보게 될 것 같다.

 

 

 

 

단풍철이라 그런지 주말, 막히는 고속도로는

버스가 거북이 걸음을 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바퀴는 굴러가니 우리는 지루함도 잊은 채

창밖에 눈을 두고 가을정취에 빠져들었다.

말만 들어도 설레는 고향 안동.

여기는 안동이라는 푯말만 봐도 안동에 오셨니껴~라는

인사말이 귀에 들어온다.


 

 

 

  

 우리는 먼저 서후면에 위치한 천등산 봉정사로 갔다.

4년 전 임동 산우회에서 가을단풍 산행으로

봉정사에 왔을 때는 마침 국화꽃 축제를 하고 있어서

온통 국화향기로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였다.

그 향기에 취해서 먼저 간 일행을 놓치고

길을 잘못 들어 아쉽게 봉정사는 보지도 못하고 돌아갔었는데

이번엔 볼 수 있게 되어 기뻤다.

봉정사는 이름 그대로

봉황이 머무는 절이라고 할 수 있다.

따스한 가을 햇살이 하루 종일 머무는 산자락에

약간 경사지긴 하지만 아담하게 자리잡은 절이

포근해서 마음까지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고행처럼 돌계단을 올라가 만세루 밑을 걸어들어가면

인자해 뵈는 부처님이 머무는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1363년에 중수되었다고 한다.

 배흘림기둥으로 유명한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13년이나 앞섰으니 국보 제 15호로 지정될 만도 하다.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 스님께서 창건하셨으니

밝은 세상을 얻기 위한

화엄경을 펼치는 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사진 찍느라 법석떨었던

그 극락전 앞 삼층석탑도 고려시대에 건립되었다니

안동과 고려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

동쪽의 편안한 땅 안동도

견훤의 군대를 물리친 삼태사의 공을 기려

고려 태조 왕건이 지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영화 촬영지이기도 하고

산사음악회가 열리기도 하는 영산암 툇마루에 앉아

마음을 다 내려놓으며 더 머물고 싶었지만

일정 때문에 아쉬운 발을 돌려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산청간고등어집으로 갔다.

안동하면 간고등어로 유명한만큼 가시를 발라낸 뒤

한손으로 간고등어구이를 집어들고 맛나게 점심을 먹었다.


 

 

 

 

 조선의 명재상이자 임진록을 쓴 학자인

서애 류성룡을 배출했으며

임진왜란 때도 피해를 입지 않았던

풍천면의 물도리동 하회마을 가는 길은

벌써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다.

한여름에 매미소리만 요란하던 때와는 다르게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일행들은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마을을 둘러보러 가고

우리는 거의 끝나가는 탈춤공연의 말미라도 보려고

그 유명한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장으로 갔다.



 

 

 

 


   말로만 듣던 안동하회탈춤이라니,

 앉을 자리 없이 빽빽하게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있었다.

흥이 넘치는 우리 가락에 절로 어깨춤이 넘실거리는데

감질나게도 공연이 끝나버렸다.

양반이야 그렇다쳐도 중들까지 풍자 당하는 데는

썩을대로 싹은 사회가 그 때나 지금이나

존재한다는 것이 씁쓸했다.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고 휘돌아 나가는

 저 건너편에 부용대가 보인다.

이곳에서 탈춤축제 마지막 날에 선보이며

450년이나 이어오는 전통불꽃놀이인

선유줄불놀이가 열리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눈으로 그려본다.

하회마을 선비들의 풍류놀이이기도 한 선유줄불놀이는

솔밭인 만송정과 강 건너편 부용대에 불줄을 매고

불을 붙이면 매듭지어진 곳마다 불꽃을 터트리며

 불덩이가 타내려오는 모습이

상상만으로도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감이 익고 벼가 익어가는

풍산 류씨 씨족마을인 하회마을은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의 종택이기도 한

남촌의 충효당과 남촌댁,

역시 풍산류씨 대종택인 북촌의 양진당과 북촌댁이

쌍벽을 이룬 기와집과 그 주변의 초가집이 어우러져

한폭의 가을 풍경화를 이루었다.


 

 

 

병산서원 가는 길은 좁은 길로 인해

차들이 뒤로 돌아 비켜주고 비켜가는 곡예길이었다.

그래도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길을 넓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만큼 독한 존재가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좋은 곳도 사람 손만 타면

길이 생기고 망가지니 말이다.


 

 

 

 

  

우리가 부부동반으로 왔을 때는

배롱나무 꽃이 붉게 피어 있었는데

지금은 담쟁이의 빨간 단풍이 눈길을 끌었다.

서애유성룡이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해

풍산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왔는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에도 살아남은

마흔일곱 개 서원 중의 하나일 만큼

소중한 가치가 많은 곳이다.


 

 

 

 

  

 유성룡 사후 그 후학들이 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시면서

유림에서 업적과 학덕을 추모하며

명문서원으로 자리잡았는데

서원 앞에 낙동강물이 흐르고 있어

경치 또한 아름다웠다.

저 붉은 적벽과 마주한

사방 탁 트인 만대루에 앉아 공부하면

누구인들 머리가 트이지 않을까?


 

 

 

  

우리 안동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 불리는 것은

전통과 예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무너져 가는 도덕의 근본이 예일진데

우리나라의 유교 전통이 올곧게 이어지며

곳곳에 잘 유지된 종택과 고택, 서원이 그 상징이다.

전국에서 가장 조상을 잘 섬기고

서원 문화와, 선비문화로 이어진 

 양반의 고장이 우리 안동이다.

그러니 내가 안동인으로서 이곳에서

나고 자란 것에 대한 자긍심이 엄청 크다.

 

 

 

 

다른 지역이라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제례도

안동에서는 일상의 한 부분이다.

유교문화라고 그렇게 무겁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고리타분한 옛것으로 배척할 이유도 없다.

그 또한 우리 조상들로부터 오는 오랜 발자취이고

溫故知新, 옛것이 있어야 새로움도 있는 것이다.



 

 

 



어느새 짧은 가을 햇살이 붉게 노을을 띄우며

서원의 지붕에 올라앉아 있다.

땅거미 내려앉는 병산서원을 뒤로하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전통 한식당인 청록 한식당으로 갔다.

깔끔하게 차려진 음식들이 입맛을 돋구었다.

배가 있는 대로 부른 우리는 산책겸

안동댐 아래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책인도교인

월영교의 야경을 보러 갔다.

그런데 사진으로 보던 화려한 불빛이 없다.

조명등도 켜는 때가 있나보다.



 

 

 

 

 

 동쪽 낙동강을 가로지르며 2003년에 완공된 월영교는

다리 가운데에 월영정이라는 정자가 있고

하루 세 번 분수를 뿜는다고 한다.

시민 공모를 통해 이름을 얻은

달빛 내리는 다리 월영교는

일명 원이엄마라는 400여 년 전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도 전한다.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 한 켤레와

복중 아기의 배냇저고리와  일명 '원이엄마' 편지가

묘를 이장하던 중에 발견되었는데

먼저 간 남편에게 전하는 편지이자 미투리였다.

그 사랑을 기려 월영교의 모양도

미투리를 형성화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야경을 꿈꿨던 우리는 실망했지만

안동 사는 소꿉친구와 후배동생이 와줘서 엄청 반가웠다.

달도 없는 밤, 월영교는 그냥 어둠에 쌓여 있다.

버스를 타고 오늘 하루 묵을 숙소로 가는데

안동문화관광단지 안에 있는 리첼호텔이었다.

아직 개발 중에 있는지 가로등만 가을밤을 지키고 있다.

주변에 즐길거리가 아무것도 없어 그냥 씻고 자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인가.

먼 길 달려 고향에 왔는데 잠만 자기 서운해

식당에서 남겨온 술과 부회장님이 해온 닭발을 안주삼아

밤늦도록 어릴 적 고향얘기로 수다를 떨었다.

여기가 어딘지 나는 어디에 있는지

분명 댐 위라고 했겠다

 '내일 아침이면 훤히 알 수 있겠지.' 하며 잠들었는데

아침에 눈 뜨니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온통 안개 세상이다.


 

  

 

 

 아침을 먹고 물러나지 않는 안개를 헤치며

다음 볼거리인 도산서원으로 향했다.

빨간 단풍이 절정으로 물들어

우리 발을 멈추게 한다.

저 강 건너 작은 섬처럼 생긴 곳에 세워져 있던

시사단이 안개 속에 숨어 있다.

이곳이 고향인 금자언니는

6년내내 온혜초등학교 소풍지가 서원이었다고 했다.

원래는 들판이었던 것을 댐으로 인해 주변은 물에 잠기고

시사단만 남아 눈길을 끌어당긴다.

녹조로 초록색이 된 저 물길을 바라보는

금자언니 마음이 얼마나 저릴까?

퇴계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유림의 사기를 높여 주기 위해

정조가 유일하게 지방에서도 특별과거를

이곳에서 보게 해주었는데 그게 '도산별과' 이다.


 

 

 

  

 서원 앞에 알통을 보이는 왕버드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가지를 땅에 눕혀 놓고 있다.

언제 봐도 소박하고 편안해 뵈는 이 서원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어 갔던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거쳐갔을까?

안개가 걷혀가고 파랗게 가을하늘이 드러나고

스승과 제자가 강론을 벌이던 전교당 마루에 앉아 있으니

따스하게 내려오는 햇살이 정겨웠다.


 

 

 

  

 선조가 긴장해서 글씨를 망칠까봐

거꾸로 불러 주었음에도 조선의 명필가 한석봉도

긴장해서 약간 삐뚤게 썼다는 현판인

<陶山書院>의 글자가 더 정겹게 다가오는데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눈에 띄어

이제 서원이 우리만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매화를 좋아했던 주인은 가고 없어도

마당 곳곳에 매화가 심어져 있고

조선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방마다 들려오는 듯

몇백 년의 시간이 흘러갔어도 과거와 현재는

이렇듯 역사의 끈을 부여잡고 소통하고 있었다.


 

 

  

 서원을 나와 민속박물관에서

안동의 전통을 다시 한번 읽어냈다.

무엇보다도 우리 권가 조상인

삼태사의 이야기에 마음이 뿌듯했고

안동 전역의 오일장날에

우리 임동 챗거리 장날이 전시되어 있어서

그리움이 확 밀려왔다.

수몰된 고향은 언제나 마음에 아롱지는

그리움의 샘인 것 같다.


 

 

 

 

 안동에 오면 필히 시장에 들려야 되는 듯

구시장에서 빵집으로 유명한 맘모스빵집에서

치즈빵도 한참이나 줄을 서서 사고

 말로만 듣던 안동찜닭으로 점심을 먹는데

그냥 우리가 해먹는 닭볶음탕에

고춧가루만 안 넣은 맛이었다.

닭고기보다는 함께 넣은 당면맛이 더 좋았다.

신시장에서는 안동의 명물 간고등어도 사고 문어도 샀다.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서는

 이렇듯 안동을 찾는 사람들이

그냥 돌아가게 하지 않고 지갑을 열게 해야 된다.


 

 

 찜닭으로 든든해진 배로 버스에 오르며

1박2일의 꿈 같은 시간이 흘러갔음이 아쉬웠다.

가을여행 주간 맞이 경북향우회 팸투어를 하면서

어디를 가든 여행은 영혼을 살찌우는 것이고

그것이 고향일 때는 몸과 마음이 모두 풍요로워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내가 걸은 발자취 곳곳에서

내 마음 안에 들어왔던 것들을

금방 새나가지 않게 꼭 잡아두어야겠다.

 



 

 
가을은 소리없이 뜨거운 불길로 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