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 그리움 속에서
-동무야, 놀자!
권 옥 희
요즘은 잘 쓰지 않지만 우리 어릴 때는 친구를 부를 때 동무라는 말을 참 많이 썼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친구라는 말 보다 동무라는 말을 쓰기를 더 좋아한다.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이름 대신 쓰는 닉네임도 '길동무' 이다.
동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외롭고 힘든 길도 함께 가는 길동무.
지금처럼 너와 나 뿐인 경쟁사회에서 서로에게 기댈 언덕이 되어 등 토닥이며
나란히 인생을 함께 갈 길동무가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동무야, 놀~자!”
얼마나 정겨운 말인가?
수많은 세월이 흘러가고 이미 아스라한 기억의 저 편에서
그리움이 되어 있어도 내 어릴 적 동무는 죽을 때까지 동무이다.
물빛 그리움이 늘 생목 메이듯 목 넘김을 방해하며
티눈같이 박혀 아른거리는 내 고향 임동.
전쟁 후 배고픈 설움이 온 세상을 휩쓸었던 때
보릿고개 때마다 먹을 것이 귀한 줄 알았던
선배님들 보다는 그래도 나았지만
우리는 풍요가 뭔지도 모르고 가난이 가난인 줄도 몰랐다.
배급으로 주던 딱딱한 분유 덩어리 하나 받아
깨물고 깨물어도 깨물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게 풍요였고,
찌그러진 양은대접에 강냉이 죽 한 그릇 받아먹으면 그게 행복이었다.
죽 대신 옥수수가루로 만든 빵이 주어졌을 때
그거라도 먹고 싶은 걸 참아가며
집에 있는 동생들 주고 싶었던 철든 아이들이기도 했다.
불도저가 반들반들하게 닦아 놓은 신작로가 미루나무 푸른 잎들이
하얀 배를 드러내놓고 바람과 까불거릴 때쯤 학교 수업도 끝났다.
한 반 60여 명, 1분단에서 5분단까지 한 분단에 20명이다.
대청소날 오래되어 삐걱거리는 마룻바닥과 복도바닥을
매끌매끌하게 양초칠 하며 닦아 놓고
어른들 들에 가서 아무도 없을 집이 뭐가 좋다고
챗거리 장터에서 면사무소 뒤 새들까지
먼 길도 아닌 길을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동무들과 냅다 뛰었다.
걸음이 빨라질 때마다 책가방 대신
하얀 광목으로 허리춤에 질끈 동여맨 책 보따리 속에선
심이 부러져라 두세 자루 연필이 댕강거리며 양철필통을 울렸다.
측백나무와 탱자나무 울타리가 둘러싸고 있는 운동장 밖으로 나오면
전쟁 때 폭격으로 귀퉁이 떨어져 나간 공굴다리 밑으로
반변천 거랑물은 한 번도 마른 적 없이
장터 모태 뒤쪽 두물머리에서 노루메기쪽에서 흘러온 물과 합류해서
무실과 한들 들판을 옥토로 만들며 흘러갔다.
장터가 서는 날이면 강변에 신나는 악극을 무대에 올리며
약장수가 들어서고 우리는 애들은 가라~ 소리를 수십 번 들으면서도
끝까지 개기며 앞자리에 앉아
울긋불긋 분장한 배우들의 모습을 신기해하며
뭔 뜻인지도 모르면서 악극을 보며 좋아하기도 했다.
봄 진달래 한창 필 때 참꽃 따먹겠다고 동무들과 뒷산을 헤매다가
우리 밭 근처에서 춥다고 누가 어떻게 불을 피웠는지는 모르지만
마른덤불로 불길이 옮겨지자 겁이 덜컹 나서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쳤었다.
저절로 꺼졌는지 어땠는지는 나도 모르지만
나중에 봤더니 밭둑을 다 태우고
밭 한가운데 있던 무덤까지 새까맣게 타 있었다.
우리는 끝내 아무 말도 안 해서 방화범으로 완전범죄를 이뤘지만
지금 생각해도 산으로 번져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 여기며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여름 날 말딱쏘와 솥가지공장이 없었다면
우리는 뭔 재미로 여름을 났을까?
아래쪽 말딱쏘는 남자애들이, 위쪽 솥가지공장은 우리들의 수영장이였다.
하얀 난닝구에 까만 빤스가 여름옷의 전부였던 우리는
물가에 가자마자 밭두렁에서 난닝구와 빤스를 벗어
넓은 바위 위로 휙 던져놓고 다이빙하듯
옥례가 먼저 펄떡 뛰어내리면 마치 삼천 궁녀가 뛰어내리듯
은희와 나 차례로 물속으로 뛰어내렸다.
그러다 배치기를 해서 배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도 맛보고
엉덩이를 바위에 부딪쳐서 죽을 듯이 운 게 누구였더라.
누군가 말했듯 늘 가슴을 뛰게 하는 동무가 있어서 행복했던 시절,
거랑에 널려진 돌멩이로 대궐 같은 집지어 놀다가
배가 고파서야 집으로 오는 길.
길가 동무네 밭에서 무 하나 쑥 뽑아 입으로 돌려가며
흙 묻은 껍데기 벗기고 연초록색 윗부분 한입 베어 물 때
알싸했던 그 맛 같은 게 동무이다.
그 꿈같은 추억을 안고 있는 고향.
내 빨간 발이 채 여물기도 전에 나는 고향을 떠났지만
내가 떠나듯 임하호 물길에 고향을 내어주고
옛집도 학교도 거랑도 동무들도 다 사라졌다.
이제 그 동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함께 어울려 술래잡기,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구슬치기, 벼락치기,
말뚝박기 하던 열두어 살 적 동무가 되는 꿈을 꾼다.
몸이 뚱뚱하든 홀쭉하든, 머리가 벗겨졌든 허옇든,
잘 살건 못 살건 옛 동무는 보고 또 봐도 정겹다.
남자도 여자도 없다. 늙수구레 해도 그냥 동무들이다.
오징어를 씹듯 옛날의 추억을 씹으면
씹어도, 씹어도 질리지 않고 달달한 정이 베어 나오는
나는 그 때 그 동무들이 좋다.
느닷없이 사는 게 무의미하다 느껴질 때
마음속에 스며드는 물결처럼 동무의 이름을 불러 본다.
동무야,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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