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는 대로

재경안동산우회 / 내 고장 순례 걷기에서

권규림시인(옥희) 저 개명했어요 2016. 3. 7. 22:27






모두가 사랑이더라


-재경안동향우회 산하

안동산우회, 내 고장 안동순례 걷기에서



                                                                         권 옥 희 (시인)




3월, 꿈처럼 기온이 쑥쑥 올라가더니

겨울을 헤집으며 오랜만에 봄날씨처럼 따스했다.
겨우내 움츠렸던 긴장이 풀린 몸이

나른하게 쏟아지는 햇살에 좋아죽겠다며

잠시 걷던 걸음을 멈추게 했다.

하늘을 올려다 봤다.
언제나 그 하늘이건만

따뜻하게 몸을 감싸주던 털옷이 거추장스럽게

이런 좋은 날도 있어

긴 겨울도 넘길 수 있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희망과 설렘을 안고 찾아오는 봄.

아직은 겨울에서 발을 뺄 때가 이른데

하늘은 모처럼 살맛나라고,

늘어지게 기지개라도 한번 켜보라고
이런 따뜻한 날을 보내주지 않았을까?

그런데 안동에  뿌리를 둔

270여 명의 안동향우회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가는 3월 산행날 비가 온단다.
요즘 일기예보는 틀리지도 않아서
밤이 되자 진짜 비가 내린다.
언 땅 녹이며 올라오는 새싹들이

조금은 더 편안하게 세상을 보라고,
메말랐던 땅을 뒤집으며 일 년 농사를 시작하는

농부들에겐 더 없는 단비임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버스 다섯 대에서 일곱 대로 늘어난 많은 인원들이

 '내 고장 순례 걷기' 행사로

임하에서 우리 고향 임동을 삼켜버린 임하댐까지

도란도란 길을 걸어 도청을 견학한 뒤

부용대 위의 검무산을 오르는 즐겁고 신나는 나들이에

비는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어둠을 훑으며 제법 굵게 내리는 빗줄기를 보며

내일은 제발 그쳐주기를 나는 내 마음에게 빌었다.

아침 7시까지 잠실 종합운동장역으로 가려면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인 듯 들려오는 알람소리에

잠꾸러기의 긴장했던 눈이 번쩍 뜨이고

 부지런히 준비를 했다.
고맙게도 신랑이 데려다 준다고 해서
조금은 느긋하게 우산과 우비를 챙기고

추울까봐 옷도 따뜻하게 입고 밖으로 나오니

내 기도가 먹혔는지 간밤에 내리던 비가 멈추고

무거운 하늘이 잔뜩 내려앉았다.



새벽 단잠 중인 한강의 희붐한 어둠을 바라보며

막힘 없는 올림픽 도로를 쌩쌩 달려

종합운동장역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분들이 와 계셨다.

허리 아프다고 하던 우리 정숙자총무는 부지런도 하지,

벌써 와서 반겨주었다.

그 친구들인 금영이와 경숙이도 있고

올해 임동초등학교 총동창체육대회 주관기수인

수언이와 미영이도 왔다.
철현이도 반겨주고 종현이도 왔다.





언제나 풍채 좋으시고 인상 넉넉하신
손요헌 산우회장님이 반갑게 손잡아 주시니

그 손끝이 따스하게 전해졌다.

이어 새벽같이 나섰을 텐데도

우리 류필휴 안동향우회 회장님은 얼굴이 훤하시다.

인자한 얼굴만큼이나 따뜻한 손을 맞잡으며

우리는 막강한 우리 회장님이 계시니 든든하고

회장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 된다고 좋아라 했다.




우리 임동면은 와룡면과 녹전면민과 함께 4호차에 올랐다.

아침도 거르고 온 사람들에게
음료수와 떡과 김밥이 주어지고
사진쟁이 지원이가 마이크를 잡더니

능숙하고 재미있게 사회를 보면서 자기 소개가 시작됐다.
우리 임동향우회 이상석회장님의 인사말과

녹전면 강명구회장님의 인사말이 끝나고

앞에서는 뒤를 보며, 중간에서는 앞도 보고 뒤도 보며

각자 특색 있게 자기 소개를 했다.

더구나 뒤에서는 회장님을 꼭 불러야 했다.

그래야 앞에서 뒤를 돌아보게 되니 말이다.




소개가 모두 끝난 뒤 녹전회장님의

안동팔경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단양에만 팔경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안동에도 어디에 내놔도 손색 없는

멋진 팔경이 있었던 거다.
선어대에서 바라보는 저녁의 돛단배와
내앞의 귀래정에서 바라보는 저녁구름,
그리고 서악루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전경과

임청각 고택, 학가산에 걸린 구름 뿐만 아니라

제비원에 내리는 가랑비며

하회마을 앞의 푸른 강물과 흰 백사장,

또 도산의 맑은 달이 그 팔경이라고 했다.

우리 고장을 빛낼 그 아름다움을 우리는 잊고 있었고

굳이 그런 것을 바라보며

풍광을 음미할 마음마저 접어두고 사는 게

현재 우리의 메마른 삶이었다.




천등산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려고 버스를 대니

버스 일곱 대에서 우루루 쏟아져 나오는

우리 고향 안동사람들.
알록달록 사람꽃이 예쁘게도 피었다.



10시 조금 넘어 임하면사무소앞에 버스가 도착하고

바로 우리 외갓집이 있는 추월 작은 콘서트장으로 이동했다.
춥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기온에

햇볕 없는 하늘이 가둬둔 습도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긴 하지만

 약7키로미터정도 되는 둘레길을

걷는 데는 안성맞춤이었다.
친구가 온다고, 기꺼이 길동무가 되어 주겠다고

열 일 제쳐놓고 달려온

깨복쟁이 소꼽동무 

안동 친구가 미리 와서 반겨준다.

함께여서 좋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지.



친구와 도라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우리 외할머니 길쌈 삼던 금소마을 초입의

다리를 건너 추월로 들어섰다.
내가 서울로 떠나던 열한 살 여름방학 때,

금소 외할매집에 동생이랑 놀러갔다가

할매가 싸준 수박 두 덩이 동생이랑 낑낑대며 들고

차도 못 다니던 꼬불꼬불 임하천길을 돌아가다

그예 수박 한 덩이 떨어뜨려 퍽석 깨지고

한참을 울상짓던 우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깨진 수박 정신없이 퍼 먹었던 기억이 났다.

금소에서 추월 지나 임하천 징검다리를 건너

 불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임동 새들 우리 집까지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갔는지

그래도 수박 한 덩이는 살려서 갔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했다.





나는 50여 년을 훌쩍 뛰어넘어

그 울퉁불퉁했던 흙길을 마음에 그리며 걸었다.

내 나이 흐르는 물처럼 흘러가는 동안

말끔하게 포장된 길 위에 그리움은

한발한발 내딛을 때마다 마음에 물결을 이루고
그 물이랑마다

세상 떠난 외할매가 떠오르고 외삼촌이 떠올랐다.
뻗어가는 나무줄기마냥

이곳 안동에 뿌리를 둔 고향 사람들이

길게 줄을 이어 걸어가는 모습은 그냥 사람꽃이다.




알록달록 꽃이 되어 고향 냄새에  취한

 그 마음들이 얼마나 애틋할지
사람이 살면서 그리움이 없으면 얼마나 삭막할까?

지금은 폐교가 된 중학교 앞 추월정에서

작은 콘서트가 열렸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 부르는 요들송,

시낭송가가 낭송하는 '모두가 사랑이더라' 를 들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이 없으면

그 또한 외로움이고

앵콜로 '아버지의 기침소리' 를 들으며

1년 전 세상 떠난 아버지가 생각나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런데 외삼촌 돌아가시고 혼자 사시는

우리 외숙모집이 이 마을 어디에 있는데

거기가 어딘지 도무지 감을 못 잡고

그냥 돌아서야 해서 마음이 짠했다.

도청에 근무해서 대구에 식구들 다 두고

임하에 혼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 친구는

우리가 온 줄 모르고 그곳에서

이웃들과 막걸리잔을 기울이고 있다가

우릴 발견하고 너무도 반가워했다.

친구 둘과 나, 우리 셋은 콘서트장을 뒤로 하고

옛날 큰외할머니가 사시던 대추월,

 임하1리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난 그렇게 먼 거리를 처음으로 걸어봤다.

임하댐이 바로 그 위라는데

30리 길을 걸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였다.

함께 내려온 많은 사람들과 같이

한호흡을 하며 걷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이순의 길에 들어선 친구 셋이서 옛이야기를 나누며

길모퉁이 돌고 돌아 걷는 일은 힘들기 보다는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였다.

남쪽의 봄은 어느 새 언 땅을 녹이며

뽀송뽀송해진 흙 위로 여린 쑥이 쏘옥 올라와 있고

 청매실 나무는 금방이라도 꽃을 터뜨릴 듯

처녀의 젖몽오리처럼 몽글몽글 꽃망울이 맺혀 있다.




겨우내 잎 다 떨구 고 죽은 듯 지내다가

우리가 느끼지 못 하는 사이

경칩 지난 햇살 불러 스스로 눈을 뜨는 매실나무의

다시 사는 봄이 얼마나 어여쁜지,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 보며

이 세상을 사는 게 단 한 번 뿐인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비가 새는지 기와 지붕에 천막을 두른

길가의 낡은 고택에 들어가 보려다가

강아지가 짖어대는 바람에 되돌아 나오고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선유정'  난간에 걸터앉아

임하호 물바람을 맞으며

나는 저 출렁이는 물 속에 잠겨 있는

내 유년의 집, 새들의 우리 집을 그려보았다.




까마득한 세월은 그렇게 잊혀지고

잊어가며 추억을 만들고 또 떠올리며

그리움을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잠시 고향을 잃은 선녀가 되어

그리움에 잠겼다가 돌아나오는데

곳곳에 빈집이 썰렁해 보였다.

어른들이 살아계실 땐

따뜻한 온기가 집을 지켰겠지만

그 어른들 세상 뜨니

집도 세상을 뜬 듯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저 밑에서 한두 사람씩 올라오고 있는 게 보이고

마을로 들어서자 뒤따르던 우리 향우회장님,

우리가 먼저 길을 나선 걸 모르시고

제일 먼저 왔다고 자부했는데

우리가 벌써 왔다고 의아해 하셨다.

그 연세에 아직도 젊은이들 못지 않은 빠른 걸음에

 건강미가 넘치니 참 대단하시다고 생각했다.




유교의 고장답게 마을 초입의 고택이

아까 지나쳐 보던 낡은 고택과는

그 풍채가 남달라 보여

집도 여자처럼 가꾸기나름이라는 걸 실감했다.

이름하여 '국탄댁'!

조선 영조때 국탄 김시정이 지은 집이라고 했다.

원래 지례마을에 있던 것을

 수몰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왔단다.

굳게 닫힌 높다란 대문을 보며

가난이 대물림이듯

가문의 영광을 건 집도 대몰림 되어

그 이름값을 한다는 걸 또 실감한다.





이제 점심시간인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래 많이 참았지.

서올엔 돌풍을 동반한 비가 쏟아지고 있다는데
마을회관 앞 마당에는 점심을 먹을 상이 차려져 있고

서울과 안동 사람 합해 족히 400여 명은 될 텐데

이 빗 속에 어떻게 먹나 걱정하며

국밥 한 그릇씩 받아 회관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에 차려진 상에서

옛날 운동회 때 운동장 뒤켠

가마솥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그 장국맛을 느끼며 달게 먹었다.

밖에 나오니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시치미 떼는 하늘이 밉다.

아니, 고마웠다.




손요헌산우회장님은 행사날 전국적인 비 소식에

행사를 연장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많은 고민을 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맞춰놓은 시간을 다시 맞추려면

또다른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 

그래서 뚝심 좋아 보이는 풍채만큼이나

그냥 밀어부쳤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노심초사했을 그 마음 걱정은 말해 뭣하랴.



배부르게 먹고 두번째 공연으로 듣는

색소폰 소리에 흥이 절로 났다.

내 얼굴이 나오든 말든

모두 모여 단체사진도 찍고

풍천면 갈전리에 위치한 도청으로 향하는 길에

시장을 둘러보고 안동농협에도 들렸다.



어깨띠까지 두르고

 우리 고장 특산물은 무엇이 있는지

구경도 하고 구입도 하면서

우리가 우리 고향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주었다.

오늘 날씨는 참 신기하기도 해서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땐 비가 오다가도

내리면 그치기를 반복했다.

부용대 위의 검무산이 흐린 하늘과 맞닿아 있고

넓은 대지에 산뜻한 느낌마저 주는

경북도청은 그 위용이 대단했다.

며칠 후 대통령까지 모시고 완공식을 하면

도청사가 정식으로 문을 열게 될 텐데

그러면 우리 고향 안동의 시대도 활짝 열리게 될 거다.




주변에 신도시까지 332만평의 대지에

2조 6천억의 사업비가 들어갈 예정으로

먼저 완공한 신청사는

청와대처럼 검무산을 배경으로

한 마리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기와지붕 선이 날렵했다.

오늘을 시작으로 앞으로 주변에 신도시가 모두 들어서면

경북의 시대가 안동에서 열리게 될 텐데

정말 고향 발전이 내 일처럼 가슴이 뿌듯했다.

이제 더 이상 안동은 낙후된 도시가 아니라

옛것을 살려 오늘의 발전을 이루는

옛것과 오늘의 최첨단이 함께 공존하는 도시가 될 것이다.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버스에 오르면서

참았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출발하느라 힘들기는 했지만

고향을 떠난 출향민과 그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이

함께 발맞추어 걸었던 '내 고장 순례 걷기 행사' 는

모두가 마음을 주는 사랑이였고

고향을 그리고 애향심을 키우는 뜻깊은 행사였다.




벌써 열세 번째 도시와 농촌을 잇는 행사라니
이미 안동사람들은 꾸준히 해왔던 행사였고

우리는 봄나들이겸 산행 대신

고향을 위하는 마음으로 함께 한 것이였다.

시간이 부족해서 임하댐도 보지 못하고

검무산도 오르지 못했지만
안동 껑꺼이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했던 오늘 하루가

두고 두고 고향 그리는 마음에 양분이 되어

나를 살찌우고 고향을 살찌우는 밑거름이 될 것 같다.



  후기 권옥희 

   편집 김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