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마음으로 오는 시

[스크랩] 그리움 담긴 류시화 시 모음

권규림시인(옥희) 저 개명했어요 2013. 3. 17. 02:23

 

 

 

 

 

류시화 시 모음

 

 

 

 

 *길위에서의 생각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녁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녁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는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저편 언덕


슬픔이 그대를 부를 때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라


세상의 어떤 것에도 의지할 수 없을 때
그 슬픔에 기대라


저편 언덕처럼
슬픔이 그대를 손짓할 때
그 곳으로 걸어가라


세상의 어떤 의미에도 기댈 수 없을 때
저편 언덕으로 가서
그대 자신에게 기대라


슬픔에 의지하되
다만 슬픔의 소유가 되지 말라

 


 


 

*그토록 많은 비가


그토록 많은 비가 내렸구나
밤 사이 강물은 내 키만큼이나 불어나고
전에 없던 진흙무덤들이 산 아래 생겨났구나
풀과 나무들은 더 푸르러졌구나

집 잃은 자는
새 집을 지어야 하리라

그토록 많은 비가 내려
푸르른 힘을 몰고 어디론가 흘러갔구나

몸이 아파 누워 있는 내 머리맡에선
어느새 이 꽃이 지고
저 꽃이 피었구나.

 


 


 

*비 그치고


나는 당신 앞에 선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내 전생애를 푸르게, 푸르게
흔들고 싶다


푸르름이 아주 깊어졌을 때쯤이면
이 세상 모든 새들을 불러 함께
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세 월


강물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네
저물녘 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홀로 앉아 있을 때
나는 들었네


그대를 만나 내 몸을 바치면서
나는 강물보다 더 크게 울었네
강물은 저를 바다에 잃어 버리는 슬픔에 울고
나는 그대를 잃어 버리는 슬픔에 울었네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먼저 가보았네
저물녘 강이 바다와 만나는

그 서러운 울음을 나는 보았네


배들도 눈물 어린 등불을 켜고
차마 갈대숲을 빠르게 떠나지 못했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 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 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그리움의 덧문을 닫아야 할 시간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나무는


나무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 가지와 뿌리는 은밀히 만나고
눈을 감지 않아도
그 머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

나무는
서로의 앞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누가 와서 흔들지 않아도
그 그리움은 저의 잎을 흔들고
몸이 아프지 않아도
그 생각은 서로에게 향해 있다

나무는 저 혼자 서 있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세상의 모든 새들이 날아와 나무에 앉을 때
그 빛과 그 어둠으로
저 혼자 깊어지기 위해 나무는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소 금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위에서
흰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을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겹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세월은 온전하게 주위의 풍경을
단단히 부여잡고 있었다

섭섭하게도 변해버린 것은 내 주위에 없었다
두리번거리는 모든 것은 그대로 였다

사람들은 흘렀고
여전히 나는 그 긴 벤치에 그대로 였다

이제 세월이 나에게 묻는다
그럼 너는 무엇이 변했느냐고 



*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이는 사람의 머리와 가슴까지의 30cm밖에 안되는 거리입니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이동하는 데 평생이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류시화/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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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omo" 와 함께하는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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