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야기

나의살던 임동은 .... 김은희

권규림시인(옥희) 저 개명했어요 2011. 9. 14. 20:05

 

 

향우회 카페출석부 윤병진 후배님 인사글에

2011년 임동초등학교 올해 입학생이

3명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쓸쓸하고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그 커다란 교정에 달랑 세명의 입학생이라니.....
언제까지 임동초등학교가 버텨낼지, 그리고 어느날 문득

모교가 사라져 버리지나 않을까 두렵고 걱정됩니다.

 

송골이 있던자리 라는것을 알리기 위해 세워둔 듯..

 

외갓동네 살때 단오날 그네 메던 저 소나무는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며 누군가를 기다리는듯 쓸쓸하게 서 있었습니다.

송골로 접어 들며 바라본 강물은 가물었던지 바닥을 보였고
외갓동네 그 무섭던 당나무는 아직도 옛 송골터 새로 닦인 도로변에

굿굿이 서 있건만 그많던 장사리 논밭의 농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외숙모님을 여의고 마령동 장지에 갔다 귀경하려고

새 임동 정류소에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었지요.

 

 

카메라로 고향 이곳 저곳을 담으며 내려다 보이는
오전의 강한 햇살에 반짝이는 임하호 금 물결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습니다. 모든걸 삼켜버린 저 강은 말이 없어도
우리들의 추억은 기억속에 앙금처럼 눌러붙어 수없이 되살아나는데
무정한 세월은 뒤도 안돌아보고 달음박질만 치고...

 

 

새로이 옮겨진 남일약방도 카메라에 담고

새로 만들어진 복지회관과 보건소가 여늬 도회지처럼

빵빵하고 겉모습은 멋지기만 한데,

이용하는이 그다지 없어보였고,

 

(새로 지어진 보건소)

(우리가 어릴때 치료받으러 다녔던 옛보건소)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내 어릴적 뛰놀던 저 곳은 종탑이 있던 교회당 마당이였을까?

질퍽 거리고 소똥이 흩어져있던 그속에서 임금수,장하영이랑

고무줄 하던 쇠전 그 어디쯤 이던가?

국화빵내음 찐빵냄새의 유혹에 집에 갈줄 모르고 배회하던

정중앙 장터 였을지도 모르지...

아직도 못 만나고 어디에선가 나처럼

늙어가고 있을 그 동무들을 그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눈물 한방울 툭! 떨어뜨리고 돌아온

중년의 나이에서 돌아본 임동 아줌마의 쓸쓸했지만

숙연하고도 소중한 시간이였습니다.

아~ 그리운 그옛날 5일장 열리던 챗거리장터~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던 산골.....

(새로 지어진 안동버스 터미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