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권 옥 희
내 열린 공간으로 주렴을 치는
저 굵은 빗방울에 희석되는 건
오랜 갈증이 아니다
30여 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의 뿌리를 잡고
견디고 견뎌가며 목숨을 내어주던
어머니의 잊혀진 죽음이다
몇 번의 소나기가 삶의 무풍지대를 엄습해 오듯
한 삶을 태어나게 하고 또 거두어 가고
그러한 자리바꿈이 알게 모르게 일어서고 눕는다는 걸
오늘 빗방울은 낱낱이 잊혀진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 기억 훑어 내린 자리마다
굵은 상처들이 손도장처럼 패이고
내가 사는 일이, 흠집 내지 않고 사는 일이
가뭄 끝에 말라가는 논바닥처럼 한 줄기 소나기를 기다려
제 가슴 갈라진 틈새를 표 안 나게 메꾸는 일임을
준비된 우산 없이 쏟아지는 소나기 속
내가 빗방울이 되고서야
젖은 하늘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