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여유
권옥희
햇빛이 잠깐 잠깐 머물다가는
숲의 가장 낮은 데에
눈꼽쟁이 들꽃 무더기를 앉히고
이름을 잊어버린 꽃에게는
미안하고 부끄러워
그늘 한 줌 뿌려두고
아직도 그 꽃 이름 몰라
나무는 엉거주춤
하늘에 눈길을 주네
내가 들어선 자리만큼
그들이 자리를 비켜서자
축소된 하늘이 들어오고
그것만이 전부인 양
죽을 듯 안고 살아온
내 욕망의 뿌리들
드디어 잠에 빠지네
새벽에 읽은 시처럼 뭉클한
나무의 여유와
이름을 잃어버린 들꽃 같은
나의 추운 가슴이 만나는 시점
사랑하는 것이 이처럼
서로의 접힌 꿈을 펴
낮은 자리에 편히
앉히는 일이구나.
출처 : 임동초등46회(임동중22회)
글쓴이 : 길동무-권옥희 원글보기
메모 :
'내 작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여름 산책 / 권옥희 (0) | 2009.09.28 |
---|---|
[스크랩] 눈물이 보일까봐. 권옥희 (0) | 2009.09.28 |
[스크랩] 가을산에서 (0) | 2009.09.28 |
[스크랩] 부용꽃. 권옥희 (0) | 2009.09.28 |
[스크랩] 껍질속의기억 권옥희 (0) | 2009.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