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집
권옥희
물에 잠긴 고향, 물가에 서서
물이랑에 너울거리는 유년의 집을 본다
지붕과 마당, 어디가 우물이며
어디가 홰나무 섰던 자린지
흐물흐물 연체동물처럼 풀어져
추억도 지워진 물속을 그냥 들여다 본다
무수한 날 새벽 공복으로 다가와
쓰린 속을 후벼 팠던 동무들 이름이,
하얀 홰나무 꽃잎으로 피어나
눈발처럼 내 가슴에 날리던 그 이름들이
무성한 물결 속에서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다
할배가 먹고 싶다고 아궁이 속에 묻어둔 고구마
몰래 하나 꺼내 먹었다고
죽일 듯 불호령 떨어지던 매운 시집살이 엄마의
타고 타서 새까만 속 같은 부지깽이마저 그리운
어린 날의 무대 뒤편으로
너무 먼 물이끼의 시간들이 너울거리고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나의 한 때
언제나 그리운 그 집을
깨끗이 풀어 놓아야 했다
부끄럽게도 웬 낯선 얼굴이
거기 멀거니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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