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머무는 추억
-2017년 안동산우회 서울 둘레길 산행에서
권 옥 희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에 바람까지 거세게 불면서
거리는 온통 낙엽 세상이 되었다.
우산을 흔들며 빗방울들이 마구 춤을 추고
걸을 때마다 미끄럽기도 했지만
그 한 잎도 한 나무에서의 일생을 마감하는 것이라
밟기조차 미안해 까치발로 걸으면서
내일이 걱정되었다.
고향사람들과의 서울 둘레길 1코스인
도봉산역에서 당고개까지의 산행하는 날이 내일이다.
더구나 이번 산행은 우리 임동산우회의
오랜 전통인 버스로 가을 단풍을 찾아가는 산행을 접고
안동산우회와 함께 하는 산행이다.
빗속을 뚫고 향우님들과 술안주라도 하려고
문어초무침도 준비해 놓았고
내일은 비가 그치고 햇살이 나겠지
하는 마음을 간절하게 하늘로 전했다.
그래서일까? 아침에 눈을 뜨니 햇살이 환하다.
춥다더니 산행하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신랑이 사다가 잘라준 단감봉지와 문어초무침을 챙기고
고맙게도 도봉산역까지 태워다 준다기에
느긋하게 화장도 하고 기분 좋게
내부순환도로를 달려간다.
어느새 우리 산우회의 일꾼인 영만이 동생과
사무부총장인 훈종님이 만남의 장소인
창포원에 일찌감치 도착해서
사진을 찍어 밴드에 올렸다.
언제나 나에게 고향을 사랑하는
안동인의 자랑이라고 추켜세우는 정흥재님도 함께였다.
햇살도 좋고 차도 안 막히고 쑥쑥 잘도 간다고
신랑도 기분 좋아 하더니
산행 즐겁게 하고 오라며
도봉산역 2번출구에 내려주고 갔다.
오늘 산행 출발점인 창포원 앞에 가니
와, 손요헌산우회장님은 물론
지난번 도민체육대회 때는 시제 지내러
고향에 가시느라 뵙지 못했던
우리 류필휴향우회장님도 와 계시고
이준석부회장님도 오셨다.
우리 임동 회장님은 중국에 여행 가 계시고
류건덕, 류수번 대선배님이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오셔서 든든하고 반가웠다.
멀리 대구에서 새벽같이 KTX를 타고
우리 고향 출신 '안동역 비는 내리고' 의
가수 김동현님도 오시고
선배님과 후배님, 반갑게 인사하기도 바쁠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곳곳에서 고향을 떠나 타지에 살면서
이렇게 기회 될 때마다 만나
그리움의 회포를 푸는 모습들이 훈훈해 보였다.
서울 둘레길은 모두 여덟 개 코스로
157km를 걸으면서 완주하는데
총 61시간 가량이 소요된다고 한다.
아마도 3년 여의 산우회 활동기간 중에
그 둘레길인 관악산과 청계산과 대모산과
우면산과 아차산, 안산
그리고 이번의 수락산을 찾지 않았나 싶다.
오늘 우리의 제1코스를 제대로 걸을려면
서울의 명산인 수락산과 불암산자락을 걸어
화랑대역까지 두 개의 산을 섭렵하면서
둘레길의 난이도가 높은 고급코스인 만큼
14.3Km를 완주하는 데
6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는 못 간다.
허허실실 산행이라고 해야 할까?
연세 드신 분도 계시기 때문에
산행이 목적이 아니라 친목이 우선이다.
가볍게 걸으며 바람도 쐬고
고향의 묵은 얘기도 나누면서
건강을 챙기는 것이다.
그래서 절반의 거리인 당고개역까지
6.39Km, 약 2시간 20분의 시간이 걸린다.
회장님들의 인사말씀이 끝나고
박상철의 '무조건' 노래에 맞춘
장선화국장의 율동에 따라 몸풀기가 시작됐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열심히 몸을 풀어야 걷는데 지장이 없다.
180여 명의 많은 향우님들이
함께 한 이번 산행의 즐거움이
어떤 모습으로 서로의 가슴에 들어앉게 될지
모두들 열심히 몸을 푼다.
이렇게 산우회가 나날이 발전하며
많은 향우님들이 모이게 되는 건
역시 호남형인 손요헌산우회장님의
인복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재작년 대모산행에서 내게 들려준 말대로
독일과, 태국으로의 세계 진출의 꿈을 이루시며
사업도 세계적으로 넓히시고
좀 더 시간이 지나서
회사가 회장님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우리 산우회와 향우회을 위해
많이 봉사하겠다고 하시는 말씀에
우리 안동향우회는 발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얼굴이야 나오던 말던
오늘 산행의 일원이니 다같이
이쪽으로 찍어라, 저쪽으로 찍어라 법석을 떨면서
단체 사진을 찍고 출발이다.
서울창포원은 수생식물원이어서
창포가 많이 자란다고 했는데
물도 창포도 구경할 수 없는 지금은 가을이다.
대신 어딜 봐도 제각각으로 물든
나무들의 색깔이 눈을 황홀하게 한다.
배낭에 안동향후회라는 노란 표를 붙이고
죽 걸어가는 행렬이 100미터는 족히 되어보인다.
중랑천의 상도교를 건너 사거리에서는
파란불을 기다려 앞 행렬이 건너가고
곧이어 빨간불인데도 신호등 고장났다며
누군가 건너가기에 모두 우르르 건너갔다.
사람이 우선이다 보니 달려오던 차들이
모두 멈춰 서 있는 웃지 못할 풍경도 생겼다.
혼자라면 결코 못할 일인데도
힘의 논리가 여기서도 작용했다.
드디어 숲으로 들어가 수락산의 산자락을 걷는다.
숲이 좋은 길이 있고, 계곡이 좋은 길이 있고,
전망이 좋은 길이 있고, 역사문화가 좋은 길 등
각 코스마다 특색 있는 볼거리와 이야기거리들이
삶에 지쳐 산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조곤조곤 들려준다.
그 길은 사람을 위한 길이고,
자연을 위한 길이며, 산책하는 길이기도 하고
이야기가 있는 길이기도 해서
두드리면 편안하기도 하고
눈요깃거리도 주며, 정다움을 들려줘서
두드림 길이기도 하다.
내가 걸을 때마다 산 속에 숨어 있는 바람과
공기와 햇살의 움직임이
내 발길따라 다가와 줄 것이다.
어쩌다 새소리 들리고 다람쥐라도 만나면
그 또한 정다운 만남일 터, 반갑다고 말해줘야지.
에구, 산자락이라더니 둘레길도 만만치가 않다.
고급코스라는 명성답게 쉽게 등을
내어주지 않는 게 산의 습성 같다.
어제 비바람 탓인지 수북이 깔린 낙엽에
'시몬, 너는 아느냐 낙엽 밟는 소리를!'
읊조리며 낭만을 느끼기는 커녕
미끄러질까봐 조심조심 걸으면서
그래도 가을산의 정취에 푹 빠져본다.
못 쓰게 된 나무로 위험하지 않게
목책을 쳐 놓고 뿌리 계단이 없는 곳은
흙이 쏠려가지 않게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앞이 트인 전망대에서는 건너편에
도봉산의 멋진 바위산이 위용을 드러냈다.
서로 껴안고 정상을 이루는 저 바위봉우리들이
자운봉과 만장봉 신선대라고 함께 가는
최병태 풍천총무님께서 가르쳐 주셨다.
산을 탈 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저 봉우리들을 정복해야 산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니
사람이 무슨 수로 저 바위덩어리를 오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기지만 도전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저 바위를 오르기 위해
힘차게 도전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류회장님께서 산에 가는
사람들 말을 믿지 말라고 하셨는데
다 왔냐고 물으면 바로 저기만 가면 된다고 했는데
저기라고 했던 곳이 끝이 없더라고 하셨다.
춥다던 날씨와는 다르게 깔딱고개를 넘으면서
이미 속옷까지 젖을만큼 땀이 흐르고
숨은 턱을 넘어 발걸음을 뗄 때마다 가슴을 쳐댔다.
내리막인가 하면 또 오르막이 시작되고
그렇게 깔딱고개를 두어 번 오르내리면서
처음 산행에 오신 순자부회장님은
앞에 병태총무님 손을 의지해 끝까지 걸음을 재촉하고
허리가 시원치 않아서 오늘 산행에
올까말까 망설였다는 밴드에
날카로운 시선으로 논리적인 글을 올리는
일명 박논객은 내 지팡이를 짚으면서도
걷는 게 많이 불편해 보였다.
회장님도 힘이 드시는지 길 한쪽에서
잠시 쉬고 계셨다. 그러나 어쩌랴.
오늘은 힘들어도 끝까지 가야 한다.
점심 도시락을 미리 나눠준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먹으려고
목적지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회장님도 도시락 드시기 위해
남은 힘을 모아 부지런히 산을 오르신다.
좁은 산길에 반대편에서 오는 등산객도 많았는데
서로 길을 비켜주며 안동! 을 외치거나
좋은 산행하십시요! 하며 서로
인삿말을 건네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아, 드디어 달콤한 휴식시간이다.
여기저기서 자리가 깔아지고
가방속에서 먹거리를 꺼낸다.
순자부회장님이 요리해온 닭발무침이
얼마나 맛있던지 목 마르던 차에
막걸리 한잔을 단숨에 마시고 닭발 안주를 먹으니
얼굴은 불콰하게 달아올랐지만
올라오느라 힘들었던 건 눈 녹듯 사르르 사라졌다.
내가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에게도 한 젓가락 건네고
저 사람에게도 한 젓가락 건네는
즐거움이 바로 산행의 묘미였다.
숙자총무가 가져온 김밥과 계란도 맛있다.
서서히 배가 불러온다.
이러다 도시락은 못 먹는 게 아닐까?
드디어 벽운동계곡의 징검다리를 건너며 목적지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노원골 채석장을 지나
당고개역으로 내려가는 게 오늘 일정이다.
그런데 힘든 사람들은 바로 아래
수락산역으로 바로 가도 되었다.
영만이동생은 산을 오르는 향우님들의 사진을 찍으며
이곳까지 우리를 안내해놓고는
초등학교 체육대회가 있다며 내려갔다.
이렇듯 책임감이란
그 사람에게 사명을 다하게 만든다.
화장실 가다 보니 뒤에 천상병시인의
산길도 있어 반가웠다.
아침 일찍 일이 있어 그것을 마무리하고
달려오신 김영식부회장님과
무릎이 좋지 않아 산행은 하지 못하고
부평에서 이곳으로 함께 와서 기다리고 있던
도산의 금자언니와 우리 임동의 지영이를 보고 얼싸안았다.
계곡물에 둥둥 떠 있는 낙엽들이
찬란한 슬픔처럼 가을이 가고 있음을 말해줬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각 면별로 자리가 깔아지고
각자 해가지고 온 음식접시가 오고 갔다.
먹는 시간만큼 더 즐거운 일이 있을까?
우리 은희국장은 역시나 아침 일찍부터
배추전을 부치고 홍어에 식혜까지
그 작은 체구에 무거운 가방 메느라
키가 더 작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즐거운 식사시간이 끝나고
이어서 풍선을 다리 사이에 끼고
걸어가서 돌아오는 게임이 시작했다.
다리 사이에서 자꾸만 빠져나오는 풍선 줍느라
마음이 더 급하고 오리처럼 뒤똥뒤뚱 걷는 모습이 우스웠다.
또다른 게임은 각 면 회장님과 총무님이 나와서
젓가락으로 종이컵 옮기기였다.
잘못하면 입맞추기도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다들 아슬아슬하게 잘 옮겼다.
문성흠향우님이 찬조한 털모자를
일직면 김원융회장님이 받았다고
좋아하시면서 계속 쓰고 계셨다.
아마도 모자가 따뜻했나 보다.
오늘 산행에 제일 많은
향우님이 참석한 곳은 녹전면이다.
우리 임동 산행에 강명구회장님과 조찬일총무님이
답사차 오셨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산우회가 형성되고
임윤수 새 회장님과 향우님들의
단합도 잘 되는 것 같아 흐뭇했다.
게임이 끝나고 언제나 끝마무리가 그렇듯
단체사진도 남겼다.
안동인이라면 안동시민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누군가 말하자 이준석부회장님이
목소리도 우렁차게 노래를 불러
모두가 박수치며 따라불렀다.
행사가 끝나면 손회장님의
언제나 내가 머문 자리는
털끝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 철칙인 만큼
우리 철현부대장님이 장갑도 안 끼고
맨손으로 쓰레기를 분리한다.
솔선수범하는 그 모습이 멋지다.
갈 길 바쁘게 가을은 떠나면서도
우리에게는 이렇게 아름다운 만남을 주고 간다.
만남은 정을 남기고 추억을 남긴다.
그렇게 우리 안동 산우회
2017년 마지막 산행이
가을의 한 장면을 빌려 오래도록
향우님들 가슴에 머무는 추억이 되기를
빨간 단풍잎 한장에 꽂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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