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그리운 그를 그리다
권 옥 희
어느새 빨간 화살나무 잎을 더듬으며
금병산 나뭇잎들도 물드는 가을 언저리로
실레마을 여기는 아직도 봄, 봄봄이다
우리도 어쩌면 자연의 일부분이라고
스물여덟 청춘의 힘으로 그 봄날
점순이와 내가 하얗게 불사르던
노란 동백의 알싸한 내음
그도 흠칫 맡았을까
들병이의 호사스런 웃음에
무너지는 남자의 순정이 얼핏 보이고
가슴 죄어드는 아픔으로
아리랑 고개를 넘나들던 천재는
나이 겨우 스물아홉에 삶의 등불을 껐다
금병산자락에서 불어오는 바람따라
외로운 그가 심은 느티나무 잎들
현대를 사는 오늘을 폼잡아 날리고
그가 탄생시키고 품어안고 간 인물
점순이, 덕돌이, 덕만이, 뭉태, 춘호, 근식이가
곳곳에서 불쑥 나타나 내 손을 잡아끈다
한동안 잉크냄새 채 마르지 않은 것 같은
그의 문학에 빠져
내 길을 잃을 것 같다
가을 바람에 깊이 잠길수록
영원한 청년, 그가 그립다.
해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가는 문학기행이
올해는 춘천의 실레마을 김유정 문학관으로 정해졌다.
화창하고 전형적인 가을 햇살이 나들이 가기 딱 좋게
아침 기분을 흔들었다.
더구나 전철을 타고 강촌 지나고 청평 지나 춘천까지
사람들이 많아서 서서 가면 힘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기차여행인데...
먼저 낭만이라는 단어부터 떠오르며
마음이 설레 그런가 간밤에 잠부터 설쳤다.
부지런히 준비하고 회장님이 모이자고 한
용산역으로 가니 다들 바쁜 일이 있어 그런지
김봉석회장님과 이홍구부회장님,
허준 축제때 함께 일했던 백상봉선생님,
우리 동네 노화식 선생님,
그나마 다행으로 함께한 장기숙선생님과 나
이렇게 달랑 여섯 명이다.
더구나 회장님은 전날 밤 40여 년만에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나 회포를 풀면서
참석하지 못할 줄 알았다.
인원이 적으면 취소되었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 없을 텐데
어떻게 빠져나오셨는지
반가우면서도 그 책임감의 무게에
마음이 짠해졌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그래 가자~
우리 문학사에 토속적이고 해학적이며
사람 사는 모습을 흙냄새와 섞어
가장 정감 있게 그렸던 김유정을 만나러 가는데
선생님들이 많고 적음이 무슨 대수랴.
화곡에서 용산으로 용산에서 청량리로
청량리에서 경춘선으로 바꿔타면서
문학기행의 설레임 때문인지
연로하신 선생님들 표정도 약간은 상기되어 있었다.
창밖은 가을을 실감하게 추수 전인
누런 벼들이 들판을 채우고 있고
하늘과 강물이 맞닿은 사이로 나무들은
알게 모르게 약간씩 자태를 바꿔가고 있었다.
우리 문단에 어떤 문학가가
자신의 이름을 딴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
춘천 못 미쳐 김유정역에 내리니
뒤로 금병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실레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내가 <만무방>, <금 따는 콩밭>, <산골나그네>,
<노다지>, <땡볕>, <따라지> 등을 두 번 세 번씩 읽으며
그의 문학에 심취해 문학을 꿈꾸게 했던 무대란 말이지.
어느덧 시간은 1시가 넘어서 우리는 배부터 채워야 했다.
춘천하면 닭갈비에 막국수가 아닌가
본고장의 분위기 때문인지 배가 고파 그런지
닭갈비가 제법 맛있다.
가평 잣막걸리도 한잔 곁들여
즐거운 여행을 예감하며 건배도 했다.
한잔 술에 불콰해져서 기분 좋게 문학촌으로 발길을 옮기니
길가에 빨갛게 색도 곱게 물든 화살나무가 도열해 서서
오는 손님들의 눈길을 끌며 예쁘게 맞아 주었다.
생가를 복원하고 동상을 세우고 낭만누리 전시실도 갖추고
곳곳에 작품과 연관된 이야기 길을 만들어
그가 없어도 우리 곁에 있는 것인 양
우리는 그의 흔적을 찾아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같은 문학을 하는 동질감으로 따뜻한 마음을 교감했다.
29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진짜로 사랑을 몰랐던 남자.
세상에 많고 많은 여자 중에
단 두 여인만 짝사랑했던 남자,
그 여인들에게마저 버림을 받고 실연의 아픔을 겪은 남자
혹자는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김유정이 지금처럼 주옥 같은 글을 남기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
첫눈에 반한 여자에게 거절 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그 아픔을 글로 표현했으니
선천적인 글쟁이의 감각으로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그의 아픔이
우리 소설사의 한 획을 긋는 작품으로 탄생된 것은
어쩜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김유정의 문학관이 아니라 문학촌이 된 이유는
그의 유품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천재는 왜 일찍 죽어야 하는지, 그래서 천재라고 하는지
마음 둘 곳 없는 외로움과 폐결핵을 앓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친구가
유품을 모아 보관하던 중 6.25전쟁이 나면서
몽땅 가지고 월북해버린 탓에
그 흔한 친필 원고 한 장 남아 있지 않았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많이 읽는 <봄봄>과 <동백꽃>이 주무대인 듯
여기도 봄, 저기도 봄, 가을이 깊어가도
김유정의 문학촌은 노란 동백꽃(생강나무꽃)향이 알싸하게 젖어드는
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가 집필했던 방 앞에서 나는 노랗게 폐를 앓으면서도
한 줄이라도 글을 쓰려고 애를 썼던
한 청년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았다.
겨우 2년 여의 작품활동기간에 3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던 작가의 방은
그렇게 암울한 시절만큼이나 어둡고도 황폐했다.
그런 그에게 역시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과의 교우는
왕성한 작품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그러나 운명처럼 너무나 닮은 꼴이어서
삶도 비슷하게 끝낸 천재들.
우리는 천재들은 왜 일찍 죽냐고 서로에게 물었다.
생가 앞 느티나무 잎은 어느덧 물들어 잎을 떨어뜨리고
벤치에 앉아 쉬는 장기숙 선생님의 얼굴이
그대로 가을 풍경이 되었다.
안 마당에는 문학반 학생들인지
선생님의 문학강의를 진지하게 들으며
김유정의 문학세계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한창 좋은 시절 한번도 그런 수업 받아 보지 못했기에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동백꽃에서 점순이와 닭싸움으로 맺어지는 인연,
봄봄에서 죽을 만큼 일을 하면서도
오직 혼례할 날만 손꼽으며 점순이 키 크기만을 기다리는데
자기편을 안 들고 장인 편을 드는 점순이
그들만의 흔적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어쩌면 사랑이 그리웠던 김유정은 점순이를 내세워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사랑을 말하려 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장님은 가을 문학기행 현수막까지 가져오셨다.
우리가 본 것은 겨우 초입, 이곳을 다 알기 위해서는
실레마을 이야기길도 돌아보아야 한다.
털털한 아저씨 같고 순해보이는 김유정의 모습 속에서
나는 그의 글들이 왜 인간미가 넘치는지 알 것 같았다.
글은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쓰는 시에서도 내 모습이 보일까?
김유정의 문학촌과 전시실을 돌아나오면서
그 쓸쓸하고 짧은 생애가 있었기에
오늘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고
보고 싶어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랑이 그리운 남자
그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은
마음에서 알 수 없는 불꽃들이 마구 요동쳤다.
무엇이든 뱉으면 그대로 글이 될 것 같았다.
김유정, 그가 내 안에 들어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