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안에 나를 담고 내 안에 너를 담아
-2017년 팔현계곡 산행기
권 옥 희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는데
식당 예약 때문인지 비가 와도
물놀이 산행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산우회장님의 공지가 있었다.
친구들과 갔던 단양 남천계곡은
물이 너무 차거워서 물놀이를 못하고
광복절 때는 비가 와서
가족들과 물놀이를 못 가고
작년과 어김없는 이맘 때,
여름 물놀이를 원없이 즐길 수 있는
천마산 팔현계곡 물놀이 산행에서
폭염과 열대야 속에서 버텨내느라
힘들었던 날들을 훌훌 날려보내며
물속에 들어앉아 시원함을 즐기며
여름을 곱게 보내주리라~
참 많이 기대했다.
물가에서 막걸리 안주하면
딱 좋을 것 같아 친구가 하는 식당에서
문어야채무침도 주문하고
고마운 신랑은 말 안 해도
끝물이라 구하기 어려운 딱딱한 복숭아를 사다가
먹기 좋게 잘라서 냉장고에 넣어놨다.
그래도~ 하며 갈아입을 여벌옷도
챙겨넣고 혹시나 늦잠 잘까봐
알람도 연속 두번으로 잘 맞춰놨다.
아침 눈 뜨자마자 텔레비젼을 켜고
오늘의 날씨부터 보았다.
에구, 틀리기도 가끔 하던 일기예보는
오늘은 고장도 안 났는지
곳곳에 폭우주의보가 내려지고
어제 늦은 밤부터 내리던
굵은 빗줄기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놀이 산행이라면서
이 빗 속에도 가냐고 신랑이
우려섞인 마음으로 한마디 한다.
"물놀이 못하면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나
실컷 먹고 오지 뭐~" 하며
아무래도 물에는 못 들어갈 것 같아
무거운 배낭에서 여벌옷은 빼고
비옷을 챙기고 우산도 챙겼다.
신랑이 태워다 줘서 군자역을 향해 가는데
이건 완전 폭우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비가
도랑에 있던 미꾸라지도 하늘로 날려보낼 판이다.
이 와중에도 새벽부터 땀 빼며 배추지짐이 부쳐
부지런히 지하철을 타고 가는 은희는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줄도 모른 채
비 오면 계곡 평상에 앉아
막걸리나 죽이자고 하고
부평에서 숙자랑 함께 오는
지영이는 노가리 아닌
노까리나 까자고 카톡이 온다.
김용진선배님은
"옥희야, 비가 와도 나는 간다. 천마산으로~"
하며 문자가 왔다.
건강해서 고마운 대선배님.
후배들과 함께 하는 물놀이 재미를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분이여서
어려움 없이 기대고 싶을만큼
편안하고 좋은 분이셨다.
군자역에 도착하니 5번 출구에서
49회 진우동생이 반긴다.
비를 피해 역사 안으로 들어가니
어느새 도착해 버스를 기다리는 용진선배님을 비롯해
45회 재수, 기정선배님, 필자언니, 총무인 미영이,
시학이를 비롯한 49회 동생들은
오늘이 친목 모임 날인지
언제나처럼 뒷좌석을 가득 채우러
보이지 않던 반가운 얼굴들까지 여러 명이 왔다.
우리는 비 걱정은 잊어버린 듯
화기애애하게 커피도 마시고
은희가 만들어온 감자버무리와
내가 가져간 복숭아 한쪽씩 먹으며 입가심을 했다.
계곡으로 바로 오는 동생들도 있어서
45인승 버스는 스무남 명 넘게
널널하게 앉아 가지만
빗줄기는 여전히 굵고
구리를 지나면서 보니
그 새 불어난 한강은 붉으스레
물색깔을 변환시키고 있었다.
장마가 끝난지 한참 지났어도
계속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는
모든 작물에게 영향을 주어
배추랑 상추 등 야채값이 금값,
과일값도 금값이다.
그럼 똑같이 빗 속에 골머리 앓는
우리 몸값은 언제 금값이 되려나.
오남리 팔현계곡 초입에 들어서니
흙탕물들이 콸콸 흘러가는데
올라갈수록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살도 세졌다.
오늘이 어쩌면 여름 물놀이 휴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물놀이는 커녕 손님들로 북적대며
왁자해야 할 계곡은 빗소리에 젖은 물소리만 요란하고
여름 한철 장사인 계곡 주변 상인들의
깊은 한숨이 들리는 듯 했다.
예약해 놓은 산마루가든에 도착하니
언제나 예쁘고 멋진 55회 동생들이
벌써 와서 맛있는 김밥이며 샌드위치,
햄버거로 아침 요기를 하고 있었다.
"누나, 소주 한잔 해!" 하며
낙현이동생이 따라 주는 소주에
재영이가 잘라주는 샌드위치를 안주삼아
목넘김이도 화끈하게 소주를 입안에 털어넣으니
찌르르한 느낌이 저 밑에서부터 올라온다.
빗물을 머금어 금방이라도 미끄러질 듯한
철제계단을 난간을 꽉 잡고 계곡으로 내려가자
낙엽물에 물들어 거므스레한 물이 물살도 거세게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아래로 휩쓸려 내려가고 있었다.
길게 놓여진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은희가 가져온 홍어며 배추전,
감자버무리가 놓여지고 내가 가져온
문어와 야채들을 어떻게 버무려야 할지 난감한데
총무인 미영이가 일회용장갑을 턱 끼더니
순식간에 초고추장에 무쳐서 접시에 죽 담는다.
살림꾼은 어디가 달라도 달라보인다.
51회 숙자네팀이 가져온 닭발이며 족발무침도 놓여지고
55회 재영이네는 단호박찜에서부터 청포묵무침도 나왔다.
49회 열 명의 동기 중에 유일한 여자친구인 오경이는
도토리묵을 써왔다.
와우~ 주문해 놓은 몸보신용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이것만 먹어도 배부르겠다.
산에 올라갔으면 물에 들락날락하며
얼마나 맛있게 먹을까?
2시에 나올 음식들을 앞당겨서
12시부터 먹는다.
물소리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으면서
연신 잔이 오가고 건배가 오가고
웃음이 넘쳐났다.
계곡 건너편 밤나무에 토실하게
매달린 밤송이들에게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들의 운치를 보며
소주병에 커다란 고추 하나를 끼워서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받아마시는 소주는 달고
57회 기중이네 동기들이 보내준 막걸리 세 말은
동생들의 사랑까지 곁들여 얼굴을 불콰하게 만들었다.
비가 와도 오십여 명 가까운
우리 임동인들은 운치를 아는 사람들이였다.
점심 때가 되어
얼굴이라도 보겠다고
빗 속을 뚫고 달려와 준
연진이랑 수언이랑 명원이 지원이 등의 동생들의 열의는
아무도 못 말릴 일이였고
통 크게 찬조한 연진이동생과
가족모임이 있어 참석 못하신 이상석향우회장님이
마음 크게 베푸셔서 향우회 이름으로
찬조도 팍팍했다.
그러니 마음껏 먹어도 된다.
비록 기대했던 물놀이는 못했지만
빗소리 음악삼아 먹고 또 먹으며
먹는 재미도 좋고
좋은 사람들과 마음 내려놓고
시간에 쫓기지 않으며
얘기하는 재미도 좋고
사람 사이 정을 쌓는
재미로 보내는 것도 좋았다.
산행이라고 굳이 산꼭대기를 밟아야
산행은 아니잖은가?
비를 핑계 삼은 이런 기회,
이런 재미는 아마도
우리 임동산우회
생긴 이래 처음이지 싶다.
오늘을 위해 홍보에 힘 쓰는 은희는
몇번이나 밴드에 공지를 띄우고
저녁에 출근해야 되는데도
휴가를 반납해가면서까지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기룡총무도
몇번씩 문자를 보내왔다.
무엇이든 노력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다.
비 온다고, 비 오는데
무슨 산이냐고 귀찮아 했으면
이런 재미도 저런 즐거움도
우리는 얻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살아갈 것이다.
오늘이 생일이여서
산행 끝나고 생일파티 하기로 했다는
51회 동기들의 힘을 등에 업은 권상욱산행대장의
향우들을 이끄는 솔선수범과
우리 김철현산우회 회장은
만인이 보는 앞에서 계곡물에 뛰어들기까지 했다.
비가 잦아들다 내리다를 반복하며
시간이 지나자 물색깔도 옅어져 갔다.
지영인 여벌옷 챙겨오면서
안 가져온다는 내게
물에 빠트린다고 했는데
몸이 근질거리며 '그냥 챙겨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현이랑 대순이가 팔씨름을 하는데
역시 젊음한테는 못 당한다.
한때의 패기도 마음만 앞설뿐이지
힘 겨루기에서는 못 당해낸다.
어쩌면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은
그래서 생겨났을 거다.
어느덧 4시가 넘었다.
해도 없이 빗 속에 갇힌 산골은
금방 어두워진다.
단체사진을 찍고 개인 차들이 동기들을 싣고 떠나고
버스가 기다리는 아래쪽 길로 내려가면서 보니
어느새 여름도 끝에 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듯 빗방울을 매단
벼도 밤도 대추도 배도 실하게
그 살을 불리고 있었다.
이제 이런 즐거움은 내년 여름이 돼야 또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쉬움 속에 가을 단풍산행이
또 기다리고 있잖은가.
때 되면 맞는 즐거움을
힘이 허락하는 한 우리는
누리며 살아야 한다.
재미가 있던 없던
한 고향사람들이기에
우리는 재미를 떠나 산행을 핑계로
정을 얻으러 만난다.
산에 가는 것은
언제 어느 때나 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임동산행은 때가 돼야
볼 수 있고 정도 얻을 수 있다.
그러니 만나고 또 만나고
너 안에 나를 담고 내 안에 너를 담으면서
오늘 못 본 선배님들,
후배님들 다음에는 꼭 볼 수 있어서
붉은 단풍 같은 웃음 함께
활활 담아냈으면 좋겠다.
고향인 도산에 가셨다가 막 올라와서 피곤하실 텐데도
우리 산우회 일원이 되어 물놀이 산행의
진면목을 맛보고 싶었던 남효용 안동향우회 밴드 공동리더님,
멀리 대구에 계시다 한걸음에 달려와 주신 재수선배님,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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