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마음으로 오는 시

내 고향 임동시인들의 시

권규림시인(옥희) 저 개명했어요 2014. 8. 27. 02:19

임하호

 

 

 

 

<김종길 詩人>

 

 

 

솔  개

- 김 종 길 -

 

 

병 없이 앓는,

안동댐 민속촌의 헛제삿밥 같은.

그런 것들을 시랍시고 쓰지는 말자.

 

강 건너 임청각(臨淸閣) 기왓골에는

아직도 북만주의 삭풍이 불고,

한낮에도 무시로 서리가 내린다.

 

진실은 따뜻한 아랫목이 아니라

성에 낀 창가에나 얼비치는 것,

선열한 육사(陸史)의 겨울 무지개!

 

유유히 날던 학 같은 건 이제는 없다.

얼음 박힌 산천에 불을 지피며

오늘도 타는 저녁노을 속,

 

깃털 곤두세우고

찬 바람 거스르는

솔개 한 마리

 

 

 

 


 낙  화
 -류희걸-

 

 


기약도 하소연도
미련도 다 버리고

 

오로지 자식위한
꽃다운 죽음인가

 

펄 펄 펄
하염없이 진
꽃잎 꽃잎 꽃잎들.

 

 

 

 

 

감 익는 마을은 어디나 내 고향
-유안진-

 

 

섶 다리로 냇물을 건너야 했던 마을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가야 했던 동네

까닭없이 눈시울 먼저 묽어지게 하는

아잇적 큰 세상이 고향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의 희망도 익고 익어 가느라고

감 따는 아이들 목소리도 옥타브가 높아가고

장마 끝 무너지다 남은 토담 위에 걸터앉은 몸 무거운 호박덩이

보름달보다 밝은 박덩이 뒹구는 방앗간 지붕에는 빨간 고추밭

어느 것 하나라도 피붙이가 아닐 수 없는 것들

열린 채 닫힌 적 없는 사립을 들어서면

처마 밑에 헛기침 사이사이 놋쇠 재터리가 울고

안마당 가득히 말라 가는 곶감 내음에

달디 단 어머니의 내음새에 고향은 비로서

콧잔등 매워오는 아리고 쓰린 이름

 

사라져가는 것은 모두가 추억이 되고

허물어져 가는 것은 모두가 눈물겨운 것

비록 풍요로움일지라도 풍성한 가을열매일지라도

추억처럼 슬픈 것,

슬퍼서 아름다운 것,

 아름다워서 못내 그립고 그리운 것

그렇게 고향은 비어가면서 속절없이 슬픈 이름이 되고 있다

허물어져 가면서 사라져가고 있다

사람 떠난 빈 집을 붉게 익는 감나무 저 혼자서 지켜 섰다

가지마다 불 밝히고 귀 익은 발자욱소리 기다리고 섰다.

 

  

 

 

레 꽃 

-김명자-

  

 

언니야

찔레꽃 피었다

 

나물 캐던 밭 언덕

첫사랑 꼴머슴과 소원 빌던 당집 앞

눈찌 곱던 그 얼굴 희미해지는데

꽃은 어쩌자고 저리 곱게 피는지

 

언니야

저 눈물 꽃 피우려고

열일곱 봄밤에 그토록 울었나

차마 깨치지 못해 품고 간 첫사랑도

입고 간 삼베 적삼도

이제는 다 삭아졌겠지

 

언니야

찔레꽃 피었다

 

 

 

 

하늘다리
-안효태-

 

 

청량산 육육봉에...

그 중 으뜸이 선학과 자란이라

애뜻한 사랑 이었더니

하늘다리로 불려지고

 

천년고찰 풍경소리 뒤로한 체

허기 달래려 총명수로 목 축이고

할딱거리며 뒷실고개 오르니

태백과 소백이 용트림 하는데

 

장엄한 자태를 뭉개구름이 떠 받치고

이것이 신선인가 싶은데

신라 명필 김생의 글 읽는 소리

귓전을 스치네

 

 

 

 

 

슬픈 봄날

 -권 옥 희-

 

 

꽃구경도 못 갔는데

바람에 실린 빗방울의무게를 못견뎌

꽃들이 지고 있다

가엾은 봄이 지고 있다

 

머리 뽀글뽀글하게 지지고

꽃구경 가자던 우리 엄마

연분홍치마 휘날리는 꿈속에서

슬픈 봄날이 간다

 

"엄마, 또 꽃이 졌어요!"

차마 말할 수 없는 가슴에

먹먹한 눈물꽃이 핀다.

 

 

 

 

컴 퓨 터
-한양명-

 

 

어떤 여성시인은

컴퓨터와 사랑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단지 욕망했을 뿐이지만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컴퓨터와 육체적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나는 것들을

입양기관에 팔고, 그 대가를 받아서

산 입에 거미줄을 걷어내고 있다, 따라서

컴퓨터와 나는 사실혼 관계에 있고

법적인 마누라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기에

컴퓨터를 마누라 중의 마누라라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확언하건데

나는 컴퓨터와 깊은 사랑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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