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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맨땅을 걷는 동안은 / 권옥희.

권규림시인(옥희) 저 개명했어요 2009. 9. 28. 13:46

       

      맨땅을 걷는 동안은

       

       

                                            권 옥 희

       

       

       

       

       언제나 넉넉했을 밥그릇을 잃고

       집 나온 개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며

       희붐한 골목길을 끌고 갑니다

       그 뒤를 따르는 한무리의 사람들

       아침을 여는 길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헛짚은 발목 위로 떠오르는 해는 오늘도 헐거워진

      그의 바지춤을 펄럭이게 할 테지만,

      아무일 없었던 듯 먹던 밥숟가락을 놓고

      그리고 또 아무일 없었던 듯 낡은 구두를 신고 

      수없이 앞구르기를 하며 그의 목을 조였을

      어금니 사이로 따사로운 햇볕은 몇 번이나

      쓰린 내장을 긁었을까요 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염없이 구르고 굴러서 그 흔적마저

      감춰버린 그의 헛웃음에는 어떤 비애가 숨어 있을까요

       

       오랜 습성을 익힌 생선가게의 비릿함 같은,

       숱한 비늘을 긁어낸 뒤에야      

       내장을 드러냈을 그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쿨럭쿨럭 메이는 목울음이 들리는 듯 합니다

       

       곧 편안해질 내일은 헛딛지 않게

       살 비추는 쪽 꼼꼼히 살피며

       조금은 축축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가는

       그를 볼 수 있겠지요

       그도 맨땅을 걷는 동안은

       느림의 미학을 맛보겠지요.

       

       
출처 : 임동초등46회(임동중22회)
글쓴이 : 코스모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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