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어머니의 우물
권규림시인(옥희) 저 개명했어요
2020. 10. 10. 17:30
어머니의 우물
날마다 어머니가 퍼낸 우물이 깊다
평생 어머니의 우물은 눈물이었다
날마다 길어 올리는 두레박에 매달려
쓰디 쓴 세상에 아프게 매달려
고된 시집살이 놓아달라고 애원했다
겨우 열세 살인 딸을 민며느리로 남의 집에 보내고
재가한 엄마처럼 살기 싫다고
날마다 우물 밖으로 물방울처럼 튕겨나가길 꿈꿨다
우물은 덫이었다
어머니의 가슴을 쥐어짜는 바람이었다
검은콩처럼 타들어가는 가슴을 누르며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았다
어느 날 집 나간 아버지 그림자를 안으며
빼앗긴 사랑이 울었다
사랑을 꿈꾸는 외로운 밤은 사치였다
애비 없이 고물거리는 새끼들을
보듬고 가는 여자의 세상은
우물 안의 어둠처럼 막막했다
남자 없이 사랑 없이 아픈 허리로
우물의 저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어머니의 인생길이 너무 아리다
꽃가마 타고 가는 길은 애초에 없었다
살아서 돌아갈 수 없는 우물에
수만 구비 발걸음에 채인 그리움을 묶어놓고
한 번도 꽃인 적 없는 어머니 품에
아무도 없다
끝까지 외롭게 우물이 한 번
출렁이다 멈췄다.
내가 이 시를 써놓고 막 잠들던 시간에
오래도록 병석에 누워계시던 엄마는
세상을 떠나고 계셨다.
2월 중순에 얼굴 보고 코로나로 면회금지 되어 오래도록 마음만 졸이다가
8월 초에 유리벽 사이로 겨우 얼굴만 보았다.
다시 면회가 금지 되고 그게 끝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잘 버티셔서 이 몹쓸 코로나 환경이 누그러지면
엄마 얼굴 보게 될 줄 알았다.
더는 못 버티셨는지 아버지 세상 떠나시고 6년.
아버지 떠나던 날처럼 하늘 푸르고 햇살 좋은 9월에
꿈에도 그리던 아버지 곁에 가시려고
아무도 모르게 새벽길을 그리 서둘러 가셨나 보다.
위독하다고 또 자식들 헐레벌떡 달려와서
목숨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지켜보게 하는
괴로움을 주지 않으려는 엄마의 마음을 읽으면서도
자식이 다섯인데 임종도 못하고 그냥 보냈다는 생각에,
또 평생을 외로움 속에 사셨는데
세상의 마지막을 아무도 배웅 없이
외롭게 떠나셨을 생각에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신랑이 깨워서 엄마 돌아가셨대~ 하는 말이 귀에 왱왱거렸다.
놀라 눈물도 안 나오고 멍했다.
요양원에서 새벽 케어 중에 숨을 거둔 모습을 발견했으니
정확한 시간도 모른다.
다만 동생한테 전화 온 시간이 4시 30분이란 걸.
20여년 전 수술 잘 받고 나와서 다같이 꽃구경 가자며
뽀글뽀글하게 파마까지 하고 당신이 걸어들어갔던 병원.
뇌졸중을 막으려고 뇌혈관 확장술을 받다가
지독하게 운이 없어서 그 길로
오늘날까지 누워지내게 되었던 병원.
한이 많지만 그래도 친숙하다고 부천성모병원에 엄마를 모셨다.
안치하기 전에 얼굴을 보니 엄마~ 엄마~ 불러도
눈 뜨지 않던 평소에 그 모습이었다.
우리 가슴에 대못을 박아놓고 이렇게 가면 엄마는 편하지~
원망하다가도 살아 지옥 같은 세상에서 벗어나
아픔 없는 곳에서 편안하게 지내시라고 얼굴을 감싸주었다.
다시는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엄마 얼굴에 따뜻함은 사라지고 너무 차겁다.
빈소를 차리고 살아 고달펐던 삶에 보상을 주듯
제단 꽃장식을 일부러 풍성하게 했다.
지난 8월에 시동생 상복을 입고 또 검은 상복을 입으니
내가 엄마를 잃었구나 하는 게 실감났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코로나로 조문 올 사람도 없어서
빈소가 썰렁할까봐 그것도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시인협회에서 조기를 보내줘서
빈소를 장식하며 엄마 딸이라는 게 자랑스러웠고
화한이 24개나 들어와서 자리가 비좁을 정도였다.
불쌍한 우리 엄마, 끝까지 외롭게 떠나면서
마지막은 꽃길을 걸어가게 할 수 있어서 흐뭇했다.
즐비하게 늘어선 하얀국화 화환 앞을
일부러 엄마와 걷듯 왔다갔다 걸어보았다.
코로나로 상황이 안 좋은 가운데도 우리 재경안동향우회 회장님과
임원님들, 고향 향우님들, 함께 활동하는 문인들, 깨복쟁이 친구들,
같이 운동하는 동료들이 직접 조문오거나 전화로 조의의 마음을 전해줘서
우리 엄마가 딸 자랑 많이 했는지 내가 참 많은 사람들에게
나쁜 모습 주지 않고 사랑받고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끼게 했다.
가을 날씨가 참 좋다.
엄마 보러 갈 때마다 기왕 떠나실거면 엄마 추억하며 웃을 수 있게
좋은 날에 가시라고 늘 말했던 게 들으셨던 걸까?
힘들게 했던 자식들에게 더 이상 짐 주지 않으려고
정말 눈부신 가을하늘로 소리 없이 가셨으니
그마저도 마음에 걸려서 눈물이 났다.
입관하면서 장례사가 우리 엄마가 꽃을 좋아하는 줄 어찌 알았는지
꽃길 타고 천국 가시라고 새벽시장에서 꽃을 사다가
관속에 예쁜 꽃을 가득 채워주셨다.
엄마와 영원한 이별을 하기 전
아무리 목놓아 운들 엄마가 일어나시는 것도 아닌데
그냥 저절로 목이 놓아졌다.
다시는 못 부를 엄마를 정말 엄마 잃은 아이가 되어 서럽게 불렀다.
엄마와 함께 살았던 우리 조카는 할머니와의 행복했던 날을 추억하며
'사랑하는 할머니 천국에서 만나요. 할머니가 내 할머니여서,
할머니 손녀딸이어서 참 행복했어요.' 하고 인사했단다.
나는 엄마는 다 그런 줄 알고 엄마 마음 몰라줘서 너무 미안하다고,
다음 생에도 엄마딸로 태어나서 그 빚 갚으며 효도하겠다고 약속했다.
성남 화장장에서 화장을 하고
고달펐던 엄마 인생 팔십평생이
진짜 한줌인 재밖에 없어서 또 눈물났다.
살아생전에 다 큰 자식들과 손잡고 소풍 오고 싶어했던 고향.
세상 떠나 영원히 모시러 가는 길에
말없이 출렁이는 임동호를 지나며
꾸역꾸역 목울음이 터져나왔다.
어차피 엄마는 때가 되면 이별하게 되는 거.
남의 이별은 슬프겠구나 생각했는데
엄마와 이별하는 건 슬픔보다
가슴 한쪽을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아버지 곁에 모시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노랑나비 한 마리가 자꾸 눈앞에 팔랑거려서 엄마일까,
아님 같은 8월에 세상 떠나신 아버지가 엄마 반겨 오신 걸까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왔다.
그렇게 좋았지만 미움도 컸던 아버지.
이번에는 손 놓치지 말고 꼭 붙잡고서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지내라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돌아보면 안 된다고 해서 산길을 휘적휘적 내려오는데
하늘은 왜 그렇게 파란지~
다시 엄마 곁으로 돌아가 한번만 더 보고 싶었다.
이 세상과 저 세상과의 사이가 너무 멀어
다시 볼 수 없지만
엄마는 내 마음에 영원히 남아계실 것 같다.
엄마, 사랑해요. 언젠가 엄마 만나러 갈 때까지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