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 깊이 잠긴 그리움의 저 편에서·6
- 내 고향 임동
권옥희
참으로 춥고 긴 겨울이었다.
새해 들어 눈다운 눈 한 번
제대로 안 내려 밋밋했던 겨울.
근 한 달여가 되도록 녹지 않고
종종걸음 치는 발걸음을 붙잡았던
작년 새해의 그 눈이 그립기도 했다.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으려고
가뜩이나 시린 무릎에 힘을 주고
하루 종일 걷다 보면 발목까지도 시큰거리던
그 눈길이 새삼 그리운 건 왜일까?

어린 날 고향 떠나 엄마 손을 꼭 잡고
처음 서울 땅에 닿았을 때의
온통 눈에 덮인 그 하얀 세상이 그리워서일까?
그렇게 그리운 이들의 꿈의 사진관처럼
우리에게 봄이 온다는 희망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까?
3월에도 눈이 내리고 꽃샘바람 불고
어디에도 눈길 주지 못하게 무거운 어깨를 움츠리게 만들더니
산수유 꽃망울 노랗게 터뜨리며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봄과
기다림 끝에 오는 봄은 느낌마저 다르다.

이맘때 나는 고향에서 뭘 했을까?
냇가에 얼음 풀리고 멀리서 보면 흰 꽃이 핀 듯
아롱아롱한 버들이가
봄볕에 몸을 녹여 강아지 꼬리처럼 살랑거릴 때
호미자루에 대바구니 하나 들고
뒷동산 어귀, 고추밭으로 냉이 캐러 가지 않았을까?
언제나 물 속 깊이 잠긴 그리움의 저 편에서 바라보면
끊지 못하는 뿌리에 기대 나는 몇 십 년을
꿈을 먹는 동심에 머물러 있고
그건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였다.

수많은 기억의 파편을 남긴 어린 날의 흔적 뒤로 봄은 오고
해마다 이맘때면 친구들과 하하 호호 웃으며
찾아가는 고향 나들이,
내가 뛰놀고 공부하던 운동장에서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모두 한마음이 되어보는 어울 한마당.
그 정겨운 만남이 있어 해가 바뀌고 겨울 끝자락이 되면
나는 수액 끌어올리는 나무들 보다 더 들뜬 날을 세며
손가락을 꼽게 된다.
나날이 사는 게 힘들고 살아 내는 일이 녹녹치 않아도
살아가면서 행복한 날도 있어야
삶이 허탈하다고 징징대는 일이 없지 않을까?

(현재 임동면소재지)
지리산에 사는 박남준 시인은 가끔
스쿠터를 타고 산골을 내려와
자장면 한 그릇 사 먹는 일이 그렇게 행복하다고 했는데
나는 년 중 이맘때 고향 가는 일이 그 무엇보다 행복하다.
내가 꿈꿔왔던 옛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땅에 친구가 있고 고향 사람들이 있어
꼭꼭 숨겨두고 싶은 행복이다.

몇 안 되는 학생들로 덩치 큰 학교가 쓸쓸해 보이지만
우리가 공부할 때는 그야말로 콩나물 교실이었던 학교,
100여 년 역사 깊은 학교 운동장에서
총 동문 체육대회가 열리는 4월.
사는 게 바빠 앞만 보고 달리며 방향을 잃고
헤매던 사람들이 지나고 나면 돌아보게 되는게 고향인지
만날 사람들은 세월을 몇 구비 돌고도
만나지는 게 인연인가 보다.
이미 전생에 아흔 하고도 아홉 번은 스쳐간 인연이라
누구든 반갑게 손잡아 보는 게 어색하지 않은 사람들.
해마다 못 보던 사람들도 만나게 되는 재미가 늘어나는
이 흥겨운 만남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1학년 신입생이 달랑3명! 보배같은 그 아이들마저 없으면
어느 날 굽이굽이 차오르는 물속으로
너와 내가 사라지고 끝내는 고향이 사라졌듯,
우리가 동문이라는 이름으로 기댈
이 교정마저 사라지는 건 아닐지
웃고 있어도 울고 있는 가슴들이
봄 햇살 속에 묻히곤 했다.

(2012년 임동초등 신입생 5명)
서로가 머리 희끗해져도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세월의 흔적이 내려앉았을 뿐.
잘 살았냐고 그 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내 고향 별미인 지글지글 구워지는
안동 간 고등어를 안주 삼아
친구도 선배도 후배도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 나누다보면
썬 크림을 잔뜩 바른 것이 무용지물이 되듯
모처럼 화사한 봄볕에 주름진 볼 살도 익어가고
참으로 떠나간 사람들의 많은 한을 담은 임하 호를 등진 채
이따금씩 불어오는 봄바람이 늘 불덩이 하나 안고 살아
먹먹해진 가슴을 시원스레 훑어 내리기도 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은 무엇이며
그 사랑에 목메는 그리움은 또 무엇인가?
긴 외줄 줄넘기에 발맞춰 마음 맞춰 뛰어넘듯
떠나 있어도 사랑이 있으면 돌아오는 게 사람이다.
떠난 사랑은 돌아오지 않아도 떠난 사람은 돌아온다는 말처럼
내가 뛰어놀던 내 어린 날의 꿈이 묻어 있는 교정에서
누구든 옛날을 돌아보지 않겠는가?
가난하고 배고파서 돌아보기도 싫은 옛날이겠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거기에 결코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내가 있고 또 네가 있다.
그래서 고향은 쓰다가 달다가, 울게 했다 웃게 하는
마법의 물약 같은 거다.

(수몰전 임동면 소재지)
고향에만 가면 밤이 새도록 얘기해도 다 못 할 것 같은
밤이 새도록 놀아도 지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만남이,
그런 친구가 좋아 나는 늘 그리움에
묻혀 사는지도 모른다.
혹여 날씨가 추울까봐 가마솥에
불 때가며 어묵국물을 끓이면서
빗방울이 떨어져도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
마음이 즐거운 탓에 서로의 몸에서 배어나오는
흥얼거림으로 밤 깊은 줄 몰랐다.
이렇듯 고향에 남아서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구가 있어
어쩌다 찾는 발길이 외롭지 않고 가난하지 않아서 좋다.
대관절 땅이란 무엇일까?
평생을 일구어도 내가 차지할 것은
내 한 몸 누일 작은 공간인 것을.
박경리가 토지의 서희를 통해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땅,
펄 벅이 대지에서 오란을 시켜 목숨과도 바꿀 수 있게 했던 땅,
그 땅은 우리 가슴에 묻혀 늘 내가 추억하는
흔적으로만 남아 아롱지지만
어머니를 끌어안듯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 땅을 잊지 못 한다.
이 땅에 없어서 더욱 애틋하고 그리워지는 땅,
어머니가 세상 떠나도 두고두고 만져보고 싶은 땅,
내 고향 임동이라서 더 그런가?

어제까지도 온통 꽃 세상으로 우리 집 앞 벚꽃나무가 환했다.
운동 갔다 오는 길에 팔랑팔랑 날리는 꽃잎이 착시현상을 일으켜
나는 진짜 흰나비 한 마리가 나에게로 다가오는 줄 알았다.
몇 번을 돌아보고 난 다음에야 `아, 꽃잎이구나!' 했다.
그런데 그 좋았던 날씨가 비바람을 데리고 오면서
고향 가는 길을 걱정으로 몰아갔다.
어느 새 40회대가 끝나고 올해 첫 50회대로 들어서서
어울 한마당을 주관하는 기수인 50회 동생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선배, 후배, 고향면민들을 초대해놓고
연이틀 예보되는 궂은 봄 날씨 때문에 얼마나 노심초사할까?


그래도 웃음 가득 실은 향우회 버스는
만 차로 고향사람들을 태우고 빗길을 달려간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 고향 길,
늘 보이던 몇몇 선배님이 벌써 안 보이게 되고
그 빈자리를 젊은 후배들이 새롭게 채워간다.
아프고도 절절한 마음으로 순환하는 세상은
저 환했던 꽃들을 거둬가고 새로이 맺는 열매들로 하여금
살아 있는 이 땅 모든 것들의 배를 불릴 거다.

그러니 꽃 진다고 아파할 것도 없는데
어느새 우리 나이가 이렇게 높이 올라갔는지
사무국장님인 류기헌 선배님 44회, 김재수 오빠 45회,
흑흑~ 그 다음이 우리 46회다.
봄비치고는 제법 굵은 빗방울이 계속 차창을 때리고
너도 나도 모르게 흘러가버린 세월을 노래로 달래면서
우리 기룡이 동생이 비맞아가면서
새큼 달큼 무쳐온 도토리묵과
막걸리 잔이 몇 순배 돌아가는 동안
가슴까지 불콰해진 우리를
버스는 어느 새 안동을 들어서서 옥동에 내려놓았다.

`여기서부터는 안동입니다' 라는
표지판만 봐도 울컥해지는 이 불치병~
40여 년 만에 처음 만나는 친구를 보고
그래도 `모새는 있네.' 라는 말이 뭔 말인지
옛날 얼굴이 남아 있다. 라는 말뜻을
세 번이나 되묻고서야 기억할 수 있었다.

곳곳에 모여 전야제를 펼치는 우리 임동 동문들로 하여
비 내리는 안동 시내가 꽤 떠들썩했을 거다.
우리만 해도 최혁민 색소폰 라이브카페
`풍년'을 통째로 빌려
온몸이 다 젖도록 뛰고 놀았으니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신나게 놀 자리 펴주면 다 드러난다.
`비야, 제발 그쳐라!'마음 속으로 열 번도
더 간절하게 빌면서
자는 둥 마는 둥 한 아침이 오고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가운데
학교 운동장에 도착하니 그래도 만국기는 펄럭인다.
곧이어 봄비에 씻긴 햇살이 운동장을 환하게 비추고
그 하늘에 감사의 표시로 폭죽을 터뜨리면서
우리의 어울 한마당은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