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마음으로 오는 시
비망록 / 김경미
권규림시인(옥희) 저 개명했어요
2011. 7. 22. 13:16
비망록
김경미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어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神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조리며 숨어 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他人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네 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
아무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유잣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 네 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잇몸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 더 오래 거짓말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
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줄는지.
아무 일 아닌 듯 해도.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 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김경미 시인-
1959 경기도 부천 출생. 한양대학교 사학과 졸업
1983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비망록>이 당선
<<시힘>> 동인 ,방송작가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