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산행

영주 선달산 산행기 - 우정에 녹고, 초록에 녹고

권규림시인(옥희) 저 개명했어요 2011. 5. 31. 01:22

 

 

우정에 녹고, 초록에 녹고

 

 

                                                                         권 옥 희

 

 

 

 봄에 나는 모든 것들은 새롭고 싱그럽다.

길 가다 만나는 작은 풀꽃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

바람 맞아 피던 꽃 때도 한참 지나고

키 높은 후박나무에서 나팔꽃을 닮은

연보랏빛 꽃들이 후두둑 지고 있는 때

그마저 아쉬워 울타리마다 빨간 줄장미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참 무정하게도 시간은 이 아름다운 순간을 기다려주지 않고 흘러간다.

 

 

그래서 봄이 짧다고 투덜대면서도

그 봄이 있어 우리는 희망을 얻고 설렘을 얻는다.

세상이 좋아서, 힘들게 비집고 나온 세상이 너무나 빛나서

풀과 나무는 온 천지를 초록으로 물들여

우리들의 눈길과 발길과 마음길마저

들로 산으로 불러내기에 안성맞춤이다.

 

 

5월 22일, 전날까지도 흐리고 비가 왔다.

날씨가 사람의 기분을 좌우한다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

궂은 비가 모처럼 계획한 우리들의 산나물투어를

방해하면 어쩌나 걱정을 떨쳐 내고

비 그친 하늘을 투명하게 드러낸 아침은

천지간에 푸름 아닌게 없다며 환한 햇살로 날개를 달았다.

안동향우회체육행사 때문에 한 주 미뤄져서

이 날로 봄 정기산행이 정해졌는데

대구의 친구들도 부산의 친구들도 못 온단다.

산행을 주관하는 우리 산행대장 광호의

열 나는 소리가 서울까지 들릴 듯한데

서울 친구들도 다들 일이 있어 아무도 못 간단다.

 

 

 

산나물이 지천이니 산나물 못 뜯을 일은 걱정말고

갈비 한 짝 준비해놓았으니 밥하고 된장만 들고 오라는데

갈 사람은 은희와 나, 달랑 둘 뿐이다.

영주까지 9시 30분 도착이라니, 차도 없는데 어떻게 가?

힘 없는 병아리들 책임질 우리 서울 대장 철현이는

자기네 태백동기들 모임에 세 번이나 빠져서

그리로 꼭 가야 한다나, 어쩐다나~

나는 철현이한테 너무 많이 속아서 너 또 늑대소년 될려구 그러지?

못 간다고 해놓고 거짓말처럼 짠~하고 나타나려고 말이야.

하며 내가 재차 물어도 그러나 역시 대답은 NO였다.

 

 

 

은희가 옥희야, 차량만 준비되면 산나물투어 꼭 갈거지?

하고 문자가 왔길래

언뜻 생각난 게 마음 좋은 은희 신랑이라, 차라리 니 신랑 꼬여서

함께 나들이겸 가자고 했더니

조금 있다가 온 답장엔 괜히 가자고 했다가

지들끼리 지지바야 머스마야 하는

우리 동창들 모임엔 가기 싫다며

만날 신랑 혼자 외롭게 해놓고 혼자만 즐긴다고

한 소리 듣고 티격태격 했다며

그냥 우리끼리 신랑들하고 가까운 북한산이나 가자고 했다.

에이~안동 친구들의 섭섭한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그러자고 했다.

은희가 아무래도 못 갈 것 같다고 쓴 카페의 글 밑에 아니나 다를까~

올 놈 안 말리고 가는 거시기 안 말린다는

 광호 대장의 댓글이 무시무시하다.

 

 

애써서 준비했는데 화났다는 증거다.

우리 신랑이 그렇게 운전하라고 했는데 무섭다고 핑계대면서

지금까지 썩혀놓은 장농 면허가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나 쿵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산나물이 지천인 영주 선달산 은밀한 계곡이

우리를 부르는 마음이 전달됐을까?

종열이가 운전해서 가게 되었다며 다시 문자가 왔다.

와~우 고마운 우리 종열군.

정호, 은희, 나, 아니? 거기에 철현이까지? 이런 나쁜 땡땡이~

그래도 태백 친구들보다 우리가 더 좋다고

마음을 돌렸으니 그 마음이 진국이다.

 

 

밤 설친 기분에 살며시 눈 감았다 뜬 것이 벌써 다섯시 이십 분이다.

아니? 분명 알람을 맞춰 놓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살펴보니 에구, 오전이 아니라 오후로 입력되어 있다.

휴~ 하마터면 늦잠 자서 어렵게 진행된 산행 못 갈 뻔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부랴부랴 밥을 싸고 옷을 입고 있는데

은희는 신랑이 데려다 줬다며 벌써 약속 장소인

강서구청 앞에 와 있다고 했다.

 

 

 

 

 

~암 매번 당신을 외롭게 하는 색시가 무엇이 이쁘다고 차까지 태워줘.

우리 은희 신랑 한번 잘 얻었다며 걸어서 갈 길도 버스 타고 달려가니

아니 이건 또 누군가? 강구에 있어야 할 왈순아지매

석순이가 와 있는 게 아닌가?

건강검진 받으러 전날 왔는데 강구로 내려가면 산행을 못 할 것 같아

아들곁에 머물며 비좁아도 서울팀에서 낑겨가기로 했다나.

듬직한 아들이 강북인 미아리에서 강서인 화곡동까지

새벽길을 가르며 엄마를 위해 운전해 줬다니

우리 억척 석순이, 정 많은 석순이도 아들은 잘 낳았다.

 

 

정호가 빠져서 다섯명, 승차인원도 알맞게 우린

종열이 차에 올라 영주로 GO!를 외쳤다.

아유~ 우리 석순이, 출발할 때부터 아나운서 해도 될만큼

말을 어찌 그리 잘 하는지

석순이의 에너지는 입으로 다 소모하는 것 같았다.

말도 빠른데다가 말끝마다 냄비가 어쩌고 고구마가 어쩌고 하는데

계속 냄비에 고구마를 쪄먹는다는 건지, 대체 뭔 소리인지 영 감이 오질 않았다.

지금도 마트에 가면 고구마가 있긴 하지만 고구마 쪄먹을 계절도 아니고

애들은 그 소리가 재밌다고 막 웃어대고 하여튼 그 말 뜻을 알아듣기까지는

출발하고도 원주쯤에 가서야 남녀간에 통하는 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난 석순이가 말 할 때마다 은희의 통역을 받아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밤 늦은 시간에도 숱한 친구들이 2차로 석순아~ 하고 전화가 오면

껴안고 자던 신랑한테 보소!~친구들이 왔다니더~

그러면 잠옷바람에 겉옷만 걸치고 신랑은 배로 가서

친구들이 돌아갈 때까지 자리를 피해준다나~

누구도 찾아오는 사람 거절 않고 따뜻이 맞아주는 저 후덕한 심성은

바닷바람 맞아가며 가슴을 키운 사랑 때문이리라.

 

 

휴게소에서 가락국수로 요기를 하고 언제 영주까지 달려가는 줄 모르게

우리는 영주 부석사 가는 길 어디쯤에서 안동친구들과 만났다.

우리의 산나물 킬러 심마니 옥례, 안동의 예쁜이인 길란이, 특급요리사 선행이,

띵호네 과수농장 경란이, 영주지킴이 인술이, 청송도서관장 성번이, 내 3학년때 짝꿍 은수,

흘러간 노래 <미워하지 않으리>를 멋드러지게 불러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기하,

안동 아가씨(?)들을 태우고 쌩 달려온 진보 무은이,

멋드러진 등산복바지가 계속 달라붙어 누가 왕제비 아니랄까봐 티 내는 희준이,

이제 곧 별 네 개 달고 진짜 우리들의 산행대장으로 취임할 광호,

역시 친구들과의 만남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

환하게 두 팔 벌려 반가움을 표시하는 친구들.

나의 마음에 그들이 있듯 그들의 마음에 내가 있음을 우리는 숨김없이 드러냈다.

 

 

언젠가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이 아니라

중년의 남자 여덟, 여자 여덟 짝도 잘 맞겠다,

풍류객 김선달이 한 번쯤 머물다 갔을 법도 한

선달산 우리들만의 은밀한 게곡에서 설마 무슨 일 내는 건 아니겠지?

우리 고향 가랫재처럼 꾸불꾸불 돌아가는 산길.

골짝이 깊어 온통 초록인 이 길은 백두대간의 한 자락인 마구령길.

창을 열어, 속세에 찌든 마음을 열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청청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키니

우정에 녹고, 초록에 녹은 가슴이 자꾸 커져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지금 내 삶의 어디쯤에 와 있는지 철학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갈 곳은 봉화 남대리 갈곳산 정상이라는데

이곳 영주 사람인 인술이가 선달산이라니 그렇게 알아야겠지.

 

 

계곡 초입에서 우리는 출출한 속도 달랠겸 인술이의 맛깔나는 김치에

광호 색시가 몇 가지를 넣어 삶았는지도 모르는

돼지목살 싸서 시원하게 막걸리를 마셨다.

꿀맛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옥례의 수리취떡에

선행이의 고소한 콩가루 묻힌 쑥떡은

말만 하면 잔소리, 직접 먹어봐야 한다.

막걸리가 몸 안을 한순배 돌았는지 얼얼해진 몸기운을 느끼며 친구들은

쌀푸대자루 하나씩을 들고 계곡 능선을 따라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햇살은 온 세상 구석구석 빈 틈 없이 비추지만 나무들이 그 빛을 받아안고

우린 그 나무가 품어주는 피톤치드를 보약인 양 마셔가며

티 한 점 없는 계곡물소리를 음악처럼 귀에 꽂고

산을 오르는 중간에 또 새참을 먹는다.

광호에게 이 계곡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자기도 모른다면서

그냥 우리들만의 은밀한 계곡이라고 이름 짓자고 했다.

그래서 선달산 은밀한 계곡이 탄생된 것이다.

 

 

우리야 산나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니 아직 구경도 못했지만

그 새 덩치는 커도 산에서만은 날다람쥐가 따로 없는 옥례가

보통 사람 눈에는 띄지도 않는다는 개두릅과 산당귀를 뜯어와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계곡에 주저앉아

생으로 된장에 꾹 찍어 먹으며 또 막걸리 몇 병이 사라졌다.

아~맛나다. 종열이는 광호가 된장만 가지고 오면 된다고 해서

북한산에서 산 된장 한 통을 통째로 들고 왔더라만

그 된장은 쓸모가 없게 됐다.

 

 

우리 고향 아줌씨들은 손맛도 좋아서 된장을 어찌 그리 잘 담궜는지

어릴 때 텃밭에서 딴 풋고추 꾹 찍어먹던 그 된장 맛이었다.

보약이 따로 없는 쌉싸름한 생나물에 구수한 날된장의 맛,

절로 힘이 불끈 솟는다.

다시 산을 오르고 초록에 취하면 앞도 안 보이는지

그만 발을 헛딛은 무은이가 계곡쪽으로 쿵 넘어진다.

아구, 야~야! 우리는 깜짝 놀라 어찌할 줄 몰랐다.

그런데 툭툭 털고 일어난다.

휴~ 다행이다. 그렇지만 근육이 놀랐을지 모르니 내일이면 온 몸이 쑤실거다.

산 정상이 가까워지자 여기저기 산나물이 나타난다.

 

 

엄나무라고 하는 개두릅 가지를 머스마들이 잡아주면

은희와 나는 심봤다를 외치며

가시에 손이 찔리는 줄도 모르고 여린 개두릅순을 잘랐다.

그것도 다 따면 안 되고 끝의 것은 다음을 위해 남겨놓을 줄도 알았다.

곰취, 단풍취, 어슬이, 참나물, 참도솔초, 나물취, 개두릅, 참두릅, 산당귀 등

그 수많은 나물 이름은 고사하고 그 잎이 그 잎 같고

그 풀이 그 풀 같아 나는 인술이가 따 주는 산나물 하나를

<보기>인 양 들고 다니며

그것과 똑같은 것을 뜯는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진짜 심봤다!

 

 

산 정상에 완전 아기손가락처럼 생긴 단풍취 천지다.

일단 눈도장 찍어두고 점심 자리를 깔았다.

광호가 상차릴려고 손바닥만한 자리를 폈는데 은희가 낸큼 올라앉자

야야~ 거기는 밥 먹을 자리다. 라고 하는 통에 은희 왈~

아이구, 내 드러워서~ 담엔 큰 돗자리 들고 온다며

우스갯소리를 해서 한바탕 웃음보가 터졌다.

 

 

오른쪽에 앉은 친구들은 경상북도, 왼쪽의 친구들은 강원도.

우리는 두 지역의 경계선 위에 자리를 깔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갈비 한 짝은 어딨냐고 했더니 이따가 하산해서 숯불구이 할 거란다.

비가 오던 날 괜히 샌치해져서 삼각지 로타리를 돌고 있다고 하더니

은희가 광호에게 주려고 육군본부로 별을 사러 간 모양이었다.

별 네 개를 자랑스레 모자에 달고 우리 산행대장 광호가

진짜 대장이 된 듯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나, 이런 사람이야~ 네~ 네 알아모시지요.

도시의 각박한 삶에 지친 친구들을 위해

이런 좋은 자리 마련해줘서 고맙고 애썼다. 친구야!

왈순아지매는 여전히 웃기는데 도사여서 밥 먹는 중에도

먹던 오이를 거시기인 양

사타구니에 꽂고 있어서 또 한바탕 웃음보가 터지고

자, 이제 배도 꺼칠겸 산나물 사냥을 가야지~

 

 

단풍취를 뜯는 손길들이 바빠지자

금방 옆구리에 차고 있던 자루들이 그득해지는데

너무 많아서 재미를 잃은 나는 뜯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이 나물이 진짜 맛있으면 은수나 종열이처럼

열심히 안 뜯은 걸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산에서 나물 한 자루씩을 받아안은 친구들은

보물이라도 얻은 듯 얼굴들이 환하고

우리 곁에 없었던 옥례는

어디 가서 땄는지 개두릅을 한 자루 안고 와서

내 가방에 한 가득 담아 준다.

나물 자루를 이고 지고 내려가는 산길,

올 때는 보지 못했던 이름 모를 들꽃들이 무척이나 예쁘다.

산 깊숙이 아무도 찾아오지 못할 거라고

군락을 이루며 세상에 나왔던 단풍취들은

나물이라는 이름을 얻었기에 이렇게 한무리 사람들에게 꺾여져

맛난 밥반찬으로 생을 마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을 마칠 것인가?

누군가에게 이름값만큼 기쁨을 주고 후에라도 기억할만한

향기는 남기고 떠나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 사람 발길처럼 지독한 게 없어서

이 깊은 산중에도 길이 나 있듯

내가 남기고 가는 발걸음 뒤에

후회는 없게 해야 할 것 같다.

산을 다 내려와 등산화 속에서 답답했던 발을

시원한 계곡물에 담그니 으~ 물이 얼음장이다.

발을 넣었다 뺐다 하는 동안

광호와 희준이는 숯불을 피운다.

불이 잘 붙지 않아 연기가 진동하고

눈물 글썽이는 건 헤어지기 아쉬운 이별의 대가라고 하면서도

다음엔 삼만원짜리 숯 사지 말고 오만원짜리 숯을 사라고

희준이 광호에게 퉁을 준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삼겹살에 내려오면서 땄던 두릅으로 쌈을 싸 먹는데

와우~ 그 환상적인 맛!

집에서 혼자 맛 없는 밥을 먹고 있을 신랑 생각이 간절했다.

집에 가면 삼겹살 사서 꼭 먹어보게 해야지.

이렇게 마음 먹으면 조금 덜 미안할려나~

은희가 가져온 양주는 산에서 다 비우고

은수가 가져온 양주도 모자랄 만큼 술은 술술 잘도 넘어갔다.

해는 늬엿해지고 우리가 먹었던 자리는 흔적도 없이 말끔히 치운 뒤

마지막으로 은수가 그래도 내 짝꿍이 젤 좋아 하며

내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장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안녕~ 손 흔드는 무은이 차가 떠나고 광호의 차도 떠났다.

 

 

 

고향에서 함께 나고 자라던 그 때의 개구쟁이처럼 우리가 흘리고 온 웃음,

계곡물을 건널 때마다 손 잡아 주던 넓직한 손 만큼이나

흘러간 세월이 지금의 우리를 황혼으로 가게 하지만,

곁에 없어도 곁에 있는 듯

함께 하지 못한 친구들의 몫까지

우리들의 우정을 푸름 속에 풀어 놓았던 하루는 너무 짧았다.

입가에 가시지 않은 개두릅의 향기만큼

나이 먹을수록 깊어지는 이 우정이 오래오래 이어질 수 있기를...

우리도 선달산을 떠나면서

은밀한 계곡에 다시 온다는 기약을 약속으로 남겨놓았다.

 

 

 

 

미워하지 않으리 / 정원

목숨 걸고 쌓아올린 사나이의 첫사랑
그라스에 아롱진 그 님의 얼굴
피보다 진한 사랑 여자는 모르리라
눈물을 삼키며 미워하지 않으리


피에 맺힌 애원도 몸부림을 쳐봐도
한번 가신 그 님이 다시 올 소냐
사나이 붉은 순정 여자는 모르리라
입술을 깨물며 미워하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