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담는 마음-스크랩

[스크랩] 보리밥 먹던 그 시절

권규림시인(옥희) 저 개명했어요 2010. 1. 5. 03:26

 

                                      

                                    보리밥 먹던 그 시절


따가운 뙤약볕 아래 걸어서 십리 학교 길은 참 멀기도 했습니다.

허기와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어른들은 모두 논밭으로 일하러 나가고

문단속을 할 필요도 없으니 사립문도 부엌문도 열려 있는 집은 한가하기까지

했습니다.


책보자기 벗어서 마루에 밀쳐놓고 부엌으로 들어가면 바람 잘 통하는 한쪽

벽에 붙여 대나무를 엮어 만든 선반 위에는 대소쿠리에 쌀알은 보일 듯 말듯,

거무틱틱한 보리밥이 모시나 삼베 보자기에 덮여 있었습니다.


사기 밥그릇에 한 그릇 퍼 담아 들고 마당가의 깊은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퍼 올린 물을 부으면 시원한 물말이 보리밥이 되었습니다.

양념 된장을 찾아 놓고 뒤뜰 고추밭에 가서 통통한 풋고추 몇 개를 따서

시원한 우물물에 씻어 소반 위에 올려놓으면 어른들의 도움 없이도 훌륭한

밥상이 차려졌습니다.


비록 입 안에서 미끌미끌 잘 씹히지 않고 미끄러지는 보리밥이지만 된장에

풋고추 푹 찍어 한 입 베어 물면 고소하고 상큼한 맛에 대충 씹어 뚝딱,

보리밥 한 그릇으로 어느새 시장기도 가시고 힘이 불끈 솟았습니다.


밥뿐만 아니라 반찬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간장, 된장, 고추장에 소금에 절여 만든 젓갈이면 괜찮은 편이었고 대부분

그야말로 채소가 전부였습니다.


그 시절 집에서나 들에서 가장 손쉬운 반찬이며 안주거리가 된장에

풋고추였습니다. 밥반찬으로도, 막걸리 안주로도, 나무랄 데가 없을 뿐

아니라 또 손쉽게 구하여 번거로운 조리 과정 없이 즉시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나에겐,

그 시절의 지겹던 기억은 지금은 그리움으로 다가 옵니다.***

출처 : 東梧齋
글쓴이 : 호랑나비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