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한 때
가을 한 때
권 옥 희
물 속에 꽃 한 송이 잠겨 있다
비릿했던 양수 속에서
물풀 뿌리 같은 탯줄을 물고
그 때 나는 이렇듯 설레는 한 세상을 꿈꾸었으리
한 때 색색으로 물들여지는
아름다운 가을 나무를 꿈꾸었으리
소리 없는 바람이 끼워넣은 이 새빨간 단풍을
오늘 나는 어쩌지 못하는데
어쩔꺼나, 네가 있어도 외로운 사랑
뼈가 흰 듯 기울어지는 세상
이 사랑의 기울기를 무사히 넘어가면
나 아직 멸망하지 않은 너의 숲 속에서
빨간 단풍 닮은 정열을 꿈꾸어 볼 수 있을까
기운 넘치는 꿈의 배경들로
너와 질펀하게 어울리던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내게 잡혀줄까
힘없이 주저앉는 낭만의 꽃그늘에
불멸의 표적으로 꽂아둘 꽃 한 송이
가슴을 쓸며, 쓸어내리며
단풍잎처럼 달궈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