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
땡 볕
권 옥 희
꽃불이 탄다
꽃불이 탄다
더럽게 변해버린 희망을 구실삼아
기우제를 준비하는 사이
푸른 것들, 이미 말라버린 것들
잎을 말아넣고
비구름은 수숫대를 빨며 높이 떠
쇳덩이 같은 몸들이 흐물거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내부가 닫힌 벽을 짓찧는 살들이 안으로 안으로
성장이 멈춘 물줄기를 따라잡는 것도 보지 못했다
어지러이 남쪽으로 밀려나는 햇살을 따라
질린 얼굴, 질린 나무들
살아 있다는 감각이 무거운 짐짝처럼
반투명에 갇힌다
여전히 꽃불이 타는
꽃불이 타는 여름의 중심
폭발하듯 쇳덩이 같은 몸도 녹아나는 중심
그렇게 낮술 마신 피의 열정을
내기바둑이나 두는 비구름은 끝내 보지 못했다
끝끝내 타는 꽃불에 갇혀
우린 비를 잊고 살았다.